[이석연의 사마천 한국견문록 23] 칭기즈 칸 “적은 내부에 있다”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하다

[아시아엔=이석연 전 법제처장, (사)아시아기자협회 부이사장] 전국시대 조나라에는 인상여藺相如와 염파簾頗라는 든든한 인물이 있었기에 진나라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보존할 수 있었다. 인상여와 염파는 서로 경쟁관계에 있었는데, 인상여가 더 많은 공을 세워 염파보다 더 높은 관직에 올랐다. 당시 조나라에는 화씨벽和氏璧이라는 보물이 있었는데 이를 안 진나라 왕이 성 열다섯 개와 맞바꾸자는 제안을 했다. 성을 주겠다는 것이 진나라의 계책이라는 것은 조나라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보물을 주지 않으면 진나라가 이를 빌미로 쳐들어올 것을 알고 있었기에 조나라는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이에 인상여가 사신을 자청하며 “성이 조나라에 돌아오면 화씨벽을 진나라에 두고 올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화씨벽을 온전하게 가지고 조나라로 돌아오겠다.”고 하였다.

화씨벽을 들고 진나라 왕을 찾아간 인상여는 진나라 왕이 성을 내줄 의향이 없음을 알고 그 보물에 하자瑕疵가 있다며 다시 돌려받은 후 신의가 없는 진나라 왕을 꾸짖으며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화씨벽을 부셔버리겠다고 하였다. 진나라 왕이 약속을 지키겠다고 하자 인상여는 목욕재계하고 닷새 후에 보물을 찾으러 오라고 했다. 인상여는 닷새 후라도 진나라 왕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 여겨 화씨벽을 몰래 조나라로 돌려보냈다. 진나라 왕이 돌아와 화씨벽을 내놓으라 하자 당신이 약속을 지킬 마음이 없기에 내가 화씨벽을 조나라로 돌려보냈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나를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 하라고 하자 진나라 왕은 그의 용기에 감화를 받아 죽이지 않고 조나라로 돌려보냈다. 우리가 늘상 사용하는 ‘완벽(完璧)’이라는 말은 화씨벽을 완전하게 조나라로 돌려보낸다는 ‘완벽귀조(完璧歸趙)’에서 유래한 것이다.

몽골제국의 시조 칭기즈칸 초상화
몽골제국의 시조 칭기즈칸 초상화 <사진=위키피디아>

이 일로 인상여는 높은 자리에 중용이 되었고 염파는 인상여를 드러내놓고 시기를 하였다. 인상여는 그런 염파를 질책하기보다는 오히려 피해 다녔다. 그러자 인상여를 따르는 사람들이 혹시 그를 두려워해서 피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자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저 진나라 왕의 위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궁정에서 꾸짖고 그의 신하를 부끄럽게 만들었소. 내가 아무리 어리석기로 염장군을 겁내겠소?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강한 진나라가 감히 조나라를 치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염파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오. 만일 지금 호랑이 두 마리가 어울려서 싸우면 결국은 둘 다 살지 못할 것이오. 내가 염파를 피하는 이유는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 하기 때문이오. <염파?인상여열전>

나라의 위급함을 위해 피한 것이지 염파가 두려워 피한 것이 아니라는 인상여의 말을 전해듣게 된 염파는 웃옷을 벗고 가시채찍을 등에 짊어진 채 인상여를 찾아가 속 좁은 자신을 용서해달라며 거듭 사죄를 했다. 이 일로 둘은 화해를 하고 죽음을 같이하기로 약속을 했다. 인상여와 염파의 이 일화에서 죽음을 함께 할 수 있는 막역한 사이를 뜻하는 ‘문경지교刎頸之交’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했다.

사사로운 감정은 만사의 걸림돌이다. 특히 나라를 운영하는 통치자나 각료들이 사사로운 원한을 품는 것은 국가 통치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덕치로 통치의 근본을 세우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뚜렷한 성찰을 먼저 해야 한다. 수신제가한 후에 치국평천하를 이룰 수 있다. 수신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분명히 세워 이름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칭기즈 칸은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칭기즈 칸이 되었다”는 말을 남겼다.

나에게 거추장스러운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극복할 때 비로소 명백한 자신과 당당하게 조우할 수 있다. 사사로운 감정과 욕망은 인간에게 가장 거추장스러운 짐이다. 그 짐을 벗어버릴 때 복수가 복수를 부르고, 원한이 또 다른 원한을 낳는 악순환의 끈이 끊어질 수 있다. 국격의 고귀함은 사사로움을 멀리하는 통치에서 나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때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