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의 사마천 한국견문록19] 공정위의 자진신고자 감면제도 ‘유감’

2011년 4대 정유사 SK·GS칼텍스·현대오일뱅크·S-Oil 담합사건때?GS칼텍스에 면죄부???

[아시아엔=이석연 전 법제처장, (사)아시아기자협회 부이사장] 2014년 10월 회사 간부의 비리를 고발한 30대의 청년이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다 못해 자살했다는 기사를 봤다. 회사에서는 그 청년이 평소에 냉소적이었다며 사태의 원인을 본인의 성격 탓으로 돌렸다. 주변의 직장 동료들의 입장도 비슷했다. 회사에서 월급을 받고 사는 입장인데 이런저런 문제가 있더라도 참고 넘어가야지 일일이 걸고 넘어지면 되겠냐는 것이었다.

한국 사람은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보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며 적당히 넘어가려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그러한 태도는 교육의 탓이 아주 크다. 학교 다닐 때 질문을 많이 하는 친구를 보면 ‘나서기 좋아 하는 놈’이라 여기고, 학급에서 일어난 잘못된 일을 선생님에게 말하면 ‘고자질 하는 놈’으로 낙인을 찍어 왕따를 시키는 일이 보편적이다. 그러다 보니 조직에서 정당한 문제제기를 하는 ‘내부고발자’들을 배신자나 고자질하는 사람 정도로 취급하는 것 같다.

내부고발자는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조직의 발전을 위해 내부의 비리를 외부에 알리는 사람이다. 양심선언을 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반면 배신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직의 비밀을 외부에 누설하는 사람이다. 배신자의 대표적인 아이콘은 은 30냥에 예수를 판 ‘가룟 유다’다. 내부고발자는 양심에 의해 행동하고, 배신자는 양심에 거슬려 행동한다. 가룟 유다는 예수를 판 자신의 행동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은 30냥을 성당에 갖다 놓았다. 성당 관계자는 유다가 갖다 놓은 은 30냥을 성당에 보관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 돈으로 밭을 사서 행려병자들의 무덤으로 사용했다. 그 후 유다는 이 밭에 와서 목을 매 자살했다. 유다가 죽은 밭의 이름이 바로 ‘아겔다마(Aceldama)’인데, 이는 예수님의 핏값으로 산 밭이라 하여 ‘피밭’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지금은 이곳에 그리스정교회 수녀원(St. Onuphrius)이 세워져 속죄와 기도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은 30냥은 배반의 징표이고, 아겔다마는 속죄의 상징이다. 아겔다마에 담긴 ‘배신과 속죄’의 상징성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유다의 자살은 배신의 대가를 스스로 치룬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배신자들은 떵떵거리며 살고 내부고발자들은 어렵게 살거나 아니면 자살까지 하는 실정이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배반자들은 유다보다 더 혹독한 인물이다.

내부고발과 배신의 경계

내부고발자를 영어로 ‘휘슬블로어(whistle-blower)’라고 한다. 이는 휘슬을 불어 주변 사람에게 문제를 알린다는 뜻이다. 휘슬블로어는 주로 기업의 내부고발자를 지칭한다. ‘딥스로트(Deep Throat)’도 내부고발자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고위관료가 정부의 문제를 고발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딥스로트는 속어로 ‘깊은 펠라티오’라는 의미인데, 이 단어가 내부고발자를 뜻하게 된 연유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 사람의 암호명이 바로 딥스로트였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딥스로트라는 어원이 참으로 재미 있다. 속된 말로 상대방에게 도덕적으로 ‘엿’을 먹이겠다는 의도가 담긴 듯한데, 이는 당신들의 행위는 포르노보다 더 저속하고 야비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딥스로트라는 암호를 사용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사실 나는 ‘내부고발자’라는 표현보다 ‘내부정보제공자’라는 표현을 쓰는 게 더 합당하지 않은가 하고 생각한다. 이유는, ‘고발자’라는 말이 어딘지 모르게 부정적인 뉘앙스로 먼저 다가오기 때문이다.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고자질’이라는 단어와 겹쳐져서 그런 것 같다. 조직의 비리를 고발하는 것은 신념과 양심에 따른 지조 있는 행동이다. 반면 고자질은 신념과 양심을 버리고 시류에 영합하기 위한 변절자의 언행이다. 이런 차이가 명료하게 구분이 안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해서 나는 ‘고발자’라는 단어보다 ‘정보제공자’라는 표현에 더 마음이 간다.

내부고발과 배신의 경계는 참으로 모호하다. 배신자가 내부고발의 탈을 쓰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남이 하면 배신이고 자기가 하면 내부고발이라는 억지가 통용되는 사회는 건전하지 못한 사회다.

2011년 5월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 4대 정유회사(SK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Oil)가 주유소 확보경쟁을 서로 제한해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기로 담합했다 하여 이들 정유회사에 대하여 총 434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정유사들의 주유소 나눠먹기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내막을 보면 그렇지 않다. GS칼텍스는 1772억원이라는 가장 큰 액수의 과징금을 부과받았지만 담합사실을 자진해서 신고했다는 이유로 과징금도 면제받고 형사고발도 제외되었다. 공정거래법상 ‘자진신고자 감면제도’, 이른바 리니언시(Leniency)를 적용한 결과였는데, 다른 정유사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다른 정유사들은 고자질한 자를 우대하는 리니언시 제도 자체의 문제점을 격렬하게 지적했다.

원칙적으로 담합은 잘못된 것이다. 따라서 리니언시 제도에 대한 다른 정유사들의 불만은 정당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현행 리니시언 제도는 문제가 많다고 본다. 이 사건은 쉽게 말해 도둑들이 모여 일을 꾸몄는데, 그 도둑들 중 하나가 자신의 몫을 더 챙기기 위해 다른 도둑들을 배신한 상황이라 생각하면 된다. 어쨌든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내부고발과 배신의 경계가 모호할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정이 그렇기는 하지만 내부고발과 배신의 경계는 분명해야 한다. 사적인 이익 때문에 마음을 바꾸는 것은 변절이고 배신이며, 공적인 이익을 위해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내부고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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