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의 사마천 한국견문록⑮] 박 대통령, 임기 전 ‘세종시 해법’ 심각히 고려하길
박근혜와 정몽준의?미생지신尾生之信 논쟁
[아시아엔=이석연 전 법제처장, (사)아시아기자협회 부이사장] 2010년 1월, 세종시를 행정수도가 아닌 기업 및 교육 중심의 도시로 만들자는 수정안을 놓고 당시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와 박근혜 전 대표와의 대립이 있었다. 정몽준 대표는 수정안에 반대하는 박근혜 전 대표를 애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가 많이 오는데도 불구하고 다리 밑에서 기다리다가 결국 익사한 미생尾生에 비유했다.
융통성 없이 원칙만 고수하고 있다는 것을 미생에 빗대어 지적한 것이다. 박근혜 당시 대표는 “미생은 진정성이 있었고, 그 애인은 진정성이 없었다. 미생은 죽었지만 귀감이 되고, 애인은 평생 손가락질 받으며 살았을 것”이라며 “세종시 원안이 잘못된 것이었다면 공약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소신이나 생각이 변했다면 판단력의 오류”라며 정몽준 대표를 비롯해 당시 한나라당 지도부를 비판했다.
신하가 신실하지 않은 것은 왕의 복이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고사성어는 우직하여 융통성이 없이 약속만을 굳게 지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이 고사성어는 노나라의 미생이라는 청년의 일화에서 유래했다. 미생은 연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연인이 사정이 생겨 약속 장소에 나갈 수 없게 됐다. 이 사정을 모른 미생은 비가 오는 다리 밑에서 계속 연인을 기다리다가 급기야는 물이 불어나 위태로운 순간에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다리 기둥을 껴안고 있다가 그 자리에서 죽었다.
미생의 이야기는 사기의 「소진열전」에 소개돼 있다. 소진蘇秦은 동주東周 낙양?陽 사람으로, 전국시대 종횡가縱橫家로 알려진 귀곡선생 밑에서 수학하였지요. 소진은 중국 전국시대의 강국 진나라에 맞서기 위해서는 남북으로 위치한 한韓?위魏?조趙?초楚?연燕?제齊의 여섯 나라가 동맹해야한다는 합종설의 대표 사상가다. 합종설에 맞선 연횡설은 진나라의 장의張儀가 주장한 것으로, 진나라가 이들 여섯 나라와 횡橫으로 각각 동맹을 맺어 화친할 것을 내세웠다. 「소진열전」은 합종책을 주장한 소진과 그의 두 동생 소대와 소려의 활약을 다루고 있다.
소진은 합종의 책략으로 진나라를 고립시켰으며 그 공로로 여섯 나라의 재상이 됐다. 그러나 진나라가 제나라와 위나라를 속여 함께 조나라를 치자 조나라 왕이 소진을 꾸짖었다. 그러자 두려움을 느낀 소진은 자신이 연나라 왕을 설득해서 제나라의 배신행위를 보복하겠다며 조나라를 떠나 연나라로 가게 되면서 그의 합종책은 와해됐다. 연나라 왕은 소진을 맞아 제나라에게 빼앗긴 성을 되찾아 줄 것을 정중히 청했다. 소진은 그 청에 따라 제나라 왕을 만나 “지금 연나라는 힘이 약하고 작지만 연나라 왕은 진나라 왕의 사위인 만큼 차후에 진나라가 연나라의 뒤를 봐준다면 큰 우환이 있을 것”이라는 논설로 제나라 왕을 설득시켜 연나라의 성을 돌려주게 만들었다.
이 일로 인해 소진은 주변으로부터 헐뜯음의 대상이 됐다.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며 나라를 팔아먹고 있는 신하라서 장차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이에 소진은 누명 쓸 것이 두려워 다시 연나라로 돌아왔지만 연나라 왕은 그에게 벼슬을 주지 않고 냉대했다. 그러자 소진은 “왕께서는 저를 더욱 아껴주셔야 한다”는 논지의 논리를 다음과 같이 전개했다.
왕께서 저에게 벼슬을 주시지 않는 것은 틀림없이 어떤 사람이 왕에게 신실하지 못한 자라고 모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신실하지 않은 것은 왕의 복입니다. 신이 듣건대, 충성스럽고 신실한 사람은 모두 자기를 위해서 행동하고, 나아가 이루는 사람은 모두 다른 사람을 위해서 행동한다고 합니다.…제가 늙은 어머니를 동주에 버려두고 이 나라에 온 것은 본래 자기를 위해 행동하는 것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나아가 이루기를 위해서였습니다. 만일 지금 증삼曾參과 같은 효자, 백이伯夷와 같은 청렴한 인물, 미생尾生과 같은 신의 있는 인물이 있다고 합시다. 이 세 사람을 찾아와 왕을 섬기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_「소진열전」
전제前提를 내세우는 일은 논리전개의 출발이다. 소진은 충성스럽고 신실한 사람은 자기를 위해 행동하고, 나아가 이루려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행동한다는 전제를 깔고 자신의 처지를 설명한다. 그러한 전제 하에, 자신이 어머니를 버려두고 온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한 행동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남들이 보기에 신실하지 못한 자라 여겨지겠지만 자신은 대의를 위해 나섰기 때문에 누가 뭐라 험담해도 그것은 왕의 복이라는 것이 소진의 논지다. 더불어 증삼, 백이, 소진과 같은 인물이 왕을 보필한다면 어떠하겠냐는 질문을 던진다. 왕은 그렇게만 된다면 아주 만족하겠다고 대답했다.
이에 소진은 기다렸다는 듯이 증삼과 같은 효자는 도리상 부모 곁을 떠날 인물이 아니라 왕을 보필할 수 없으며, 백이처럼 청렴하고 의리 있는 인물은 어떠한 벼슬도 원치 않아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으니 왕께서 그를 중용할 수 없을 것이며, 미생처럼 신의 있는 자는 다리 기둥을 껴안고 죽었으니 어찌 제나라의 군대를 물리칠 수 있겠냐고 반박을 하면서 “이와 같이 신의 있는 자를 왕께서는 또 어떻게 천리 밖으로 보내 제나라의 강한 병사를 물리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이른바 충성스럽고 신실하였기 때문에 왕께 죄를 지은 것입니다”라고 변론하였다.
그의 논지는 사람들이 자신을 신의 없는 사람이라 모함하는데, 따지고 보면 신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행동하는 자들로 결코 왕을 보필할 수 없다는 것이며, 신의가 없다고 모함을 받은 자신이야말로 가장 충성스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그렇다면 소진의 말대로 신실하지 않은 것이 왕의 복일까? 요즘 중국동포(조선족)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들어와 있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한다. 특히 범죄와 관련된 사태들이 빈번하다 보니 그것들이 사람들의 의식에 누적되면서 ‘조선족=범죄자’라는 전제가 뇌리에 자리잡은 것 같다. 이것은 몇몇의 사례로 전체를 규정하려는 일반화의 오류다. 소진의 논리도 그렇다. 신실한 사람은 자신을 위해 행동한다는 전제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