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의 사마천 한국견문록⑧] 마오쩌둥은 아첨꾼 린바오를 왜 제거했나?

자기 발등 찍은 린바오의 ‘3불, 3요주의’

[아시아엔=이석연 전 법제처장, 변호사] 마오쩌둥이 ‘지식인 5폄훼론’을 펼쳤다면 그의 가장 지근거리에 있었던 2인자 린바오林彪는 ‘삼불주의三不主義’와 ‘삼요주의三要主義’라는 원칙에 따라 자신의 처세를 적절히 전개했다.

린바오는 대약진정책을 펼친 마오쩌둥을 적극 지지해 공산당 내에서 마오쩌둥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다. 린바오는 마오쩌둥의 비위를 잘 맞춰 입지를 굳힌 인물이다. 그가 말하는 삼불주의란 ‘①책임지겠다고 큰소리 안 하고, ②쓸데없는 건의는 안 하고, ③심기상할 일은 안 한다’는 것이며, 삼요주의는 ‘①주석이 한 마디 하면 맞장구치고, ②칭찬만 하고, ③좋은 소식만 전한다’는 것이다.

권력자 앞에서 책임질 일은 하지 않고 입맛에 맞는 말만 골라하겠다는 그의 처세론은 1970년 8월 개최된 9기 전당대회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 자리에서 린바오는 마오쩌둥이 당대 최고의 천재이고, 그 천재를 알아본 자신도 천재라는 내용의 낯 뜨거운 ‘천재론’을 피력한요. 뿐만 아니라 1964년 마오쩌둥이 쓴 글과 그가 행한 연설 중에서 새겨 들을만한 말들을 모아서 『모주석어록毛主席??』을 출간하고 직접 서문까지 썼다. 그런데 마오쩌둥은 오히려 그를 견제했다.

지식인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마오쩌둥의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사태는 당연한 결과다. 이에 린바오는 아들과 함께 마오쩌둥을 살해하려는 반역을 도모하였지만 실패로 끝나게 되어 소련으로 망명을 가는 도중 몽골 근처 상공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게 된다. 비행기 추락사에 대한 중국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연료 부족으로 인한 추락사이지만 미사일 공격으로 격추되었다는 설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큰 일을 하는 사람은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

마오쩌둥을 천재로 묘사하고 그를 알아본 자신도 천재라 했던 린바오의 최후는 초라하고 참담하였지만 역생의 최후는 장엄하고 숭고했다. 역생의 도움으로 연나라와 조나라를 평정하고 천하통일의 과업을 눈앞에 둔 유방이 제나라의 저항으로 골머리를 썩자 역생은 제나라 왕을 설득해보겠다며 홀로 제나라로 향했다. 역생은 제나라 왕 전광에게 천하의 민심이 한나라로 기울고 있으니 항복하여 사직을 지킬 것을 권고하였고, 전광은 역생의 말을 받아들여 역하歷下를 지키던 병사를 거둬들였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전해들은 회음후 한신이 자신도 공을 세우겠다는 욕심으로 야밤에 제나라를 습격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제나라 왕은 역생이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하며 한신의 군대를 멈추지 못한다면 삶아 죽이겠다며 역생을 다그쳤다. 목숨이 경각에 붙어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역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큰일을 하는 사람은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지 않으며, 덕이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비난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당신은 나로 하여금 당신을 위해서 그것을 바꾸게 할 수는 없습니다._「역생?육가열전」

비굴하지 않게 자신의 소신을 끝가지 지켜낸 역생은 결국 팽살烹殺을 당한다. 죽음이라는 것도 그의 정신 앞에서는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았다. 지식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바로 지행합일知行合一이다. 죽음도 불사하며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강직하게 실천하는 역생의 모습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다.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고, 다른 사람의 비난을 돌아보지 않는 일관된 자세와 삶은 현대의 지식인들이 삶의 사표師表로 삼아야할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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