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의 사마천한국견문록⑫]이상득 의원의 눈물과 법정스님 말씀 “70 넘어 자리 연연하면 위태로울 뿐”

[아시아엔=이석연 전 법제처장, (사)아시아기자협회 부이사장] 이상득 의원이 구속되어 재판을 받을 때 구치소로 접견을 간 적이 있다.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가 아니라 도의상 찾아간 것이다. 그때 이상득 의원이 동생(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장남이 자신에게 “이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쉬시라고 했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떨구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만일 그때 장남의 요청대로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 초야에서 유유자적했더라면 존경받는 원로로 남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법정스님은 말했다. “나이 70이 넘어서도 어떤 지위에 집착하는 것은 통행금지 시간이 지났는데도 길을 가는 것과 같아서 위태롭다”고.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 키케로는 폐부를 찌르는 이야기를 한다. “노욕은 나그넷길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노자路資를 더 마련하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이다.” 노욕은 누추할 뿐이다. 원로가 없는 사회는 삶의 풍경이 경박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사회 지도자들이 깊이 인지할 필요가 있다.

명성과실과 벌공긍능의 사회

진희는 양梁나라 사람으로 젊었을 때는 위魏나라 공자 무기無忌를 자주 칭찬하고 흠모했다. 그래서 그는 군대를 이끌고 변방을 지킬 때도 빈객들을 불러 모으고 선비들에게 몸을 굽혀 겸손하게 행동했던 것인데, 그의 명성이 있는 사실보다 지나쳤다._「한신?노관열전」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언젠가 교수신문에서 과대평가된 문학인에 대한 내용을 다룬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과대평가된 문학인으로 고은, 이문열, 서정주가 꼽혔던 걸로 기억한다. 고은은 문학활동은 많은데 작품은 개성적이지 못하고, 이문열은 작품의 질에 비해 지나친 문단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서정주는 작품은 좋을지 모르나 친일과 같은 행적이 있다는 점이 과대평가 근거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 평가가 사람들에게 얼마만큼의 동감을 얻어낼지 궁금하다. 이 역시 평가자의 가치관과 선호도에 따른 주관적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본다.

나는 문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문학작품을 읽어온 성실한 독자라고 자부한다. 지금도 고은 시인의 시를 자주 읽고 있다. 그리고 다시 음미할수록 깊고 그윽한 맛과 멋을 느낀다. 그런데 그의 작품이 과대평가되었다니! 어쨌든 문학에 대한 평가는 취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기에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라 여겨진다. 그러나 정치인들이나 조직의 지도자들에 대한 평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사람이란 완전히 객관적일 수는 없다. 그렇기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감정과 취향이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에 일정 정도 투영이 되기 마련이다. 평가의 오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는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여 평가자들의 주관적 판단과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 당나라에서는 인재 등용의 기준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내세웠다.

신身이란 사람의 풍채와 용모를, 언言이란 사람의 언변을, 서書는 글씨를, 판判은 판단력을 뜻한다. 지금 시대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환경이 맞지 않는 것도 있지만 언변과 판단이라는 항목은 지금도 중요시되고 있다. 인물평가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다. 언행이란 그 사람의 판단력을 비추는 거울이다.

언행을 보고 사람을 평가해도 때론 그것이 잘못된 판단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권모술수로 자신의 명성을 쌓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한신?노관열전>에서 “덕을 쌓아 자신의 명성을 이룬 것이 아니라 권모술수로 벼슬을 얻고 공을 세운 진희陳?라는 인물에 대해 실질보다 명성이 높았다名聲過實”고 했다. 진희라는 인물은 어찌된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유방에 의해 열후列候에 봉해져 조나라와 대나라의 변방 군사를 지휘하게 되었다.

그는 빈객과 선비들을 극진히 대접했다. 하지만 그 행동이 너무 과하다는 것을 인식한 주창이 그를 조사하자 잘못이 많이 드러났다. 이에 위협을 느낀 진희는 모반을 일으켰다가 결국에는 번쾌에 의해 목이 잘려 죽었다. 유방이 진희를 열후에 봉한 이유는 나름 그에 대한 평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권모술수를 파악하지 못했기에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직분에 비해 명성이 지나치게 높은 사람들은 권모술수에 능한 경우가 많다.

화려한 명성이 곧 그 사람의 실질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명성과 실질이 일치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명성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평가에 의해서 누적이 되는 것이다. 실질에 충실하면 명성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지나치게 대중을 의식하고, 지나치게 청렴을 강조하고, 지나치게 애국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진희와 같은 인물이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사마천은 명성과실과 더불어 벌공긍능伐功矜能의 사람을 경계하라고 했다. 벌공긍능이란 자기의 공적과 능력을 떠벌리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이른다. 우리 주변에 명성에 비해 지나치게 과대평가 되었거나 자신의 공을 팔고 다니는 사람은 없는지 한번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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