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의 사마천 한국견문록⑨]지식인의 유형 5가지···임기응변·집단자폐·현실감 상실·자아도취·예측불능
‘실천적 지식인’ 사르트르, ‘오적필화’ 사형선고 김지하 구명운동
漢 장석지 “어찌 색부의 수다스런 말재주를 본받으라 하십니까!”
[아시아엔=이석연 전 법제처장, 변호사]프랑스 리옹대학의 교수 레지 드브레는 『지식인의 종말』에서 현대 지식인들의 병증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 지적했다. 그 중에 하나가 얄팍하고 설익은 생각을 유창한 언변으로 그럴듯하게 늘어놓는 ‘순간적 임기응변증’이다.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 그때그때 말재주를 부리는 지식인의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지적하는 내용이다. 드브레는 또 자신들만의 틀에 갇혀 대중과 단절된 ‘집단 자폐증’, 연구도 안 하며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는 ‘현실감 상실증’, 여전히 사회의 도덕을 선도한다고 믿는 ‘도덕적 자아도취증’, 들어맞지도 않는 예측을 쏟아놓는 ‘만성적 예측 불능증’이다.
『사기』의 「장석지?풍당열전」에 나오는 장석지는 상황을 고려치 않고 서슴없이 직간을 하는 대쪽 같은 인물이다. 한나라 문제文帝가 호랑이를 가두어 기르는 우리를 방문하여 관리자들에게 동물들에 관한 책에 대해 여러 가지를 질문하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때 하급관리에 해당하는 색부嗇夫가 상급자를 대신하여 매우 상세하게 대답하자 문제는 색부를 칭찬하며 상급관리자로 승진시키라고 한다.
사마천은 색부의 태도에 대해 “그는 이 기회에 자신의 능력을 보이려고 소리를 따라 메아리가 흘러나오듯 묻는 즉시 대답하는 것이 끝이 없었다”라고 부연 설명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자신의 직무에 대해 철저하지 못한 상급자들이 문제이지 색부의 태도에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장석지는 강후 주발周勃과 동양후 장상여張相如가 어떤 인물인지를 문제에게 질문을 한다. 문제가 두 사람 다 덕망이 있는 사람이라 대답하자 장석지는 “강후와 동양후를 덕망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지만, 이 두 사람은 일찍이 어떤 일에 관여하여 말할 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 이 색부의 수다스런 말재주를 본받으라고 하십니까!”라고 말한다.
말재주만으로는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장석지는 기회를 틈타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잘난 척하는 색부의 심중을 간파한 것이다. 여기서 나온 고사성어가 색부이구嗇夫利口인데, 그 뜻은 호권虎圈:호랑이 우리을 지키는 자의 입이 재다는 것으로 남 앞에서 자신을 뽐내는 사람을 일컫는 경우에 사용된다.
권력자의 곁에는 늘 아부하는 사람이 있다. 역대 정부에서 대형 인사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아부하는 사람만 있고 직간하는 사람이 없다면 나라의 혼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자신의 공을 과도하게 부풀려 자랑하거나,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교언영색巧言令色을 일삼는 지식인들이 득실거린다면 나라의 기둥이 썩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색부와 같은 사람이 많다면 권력자는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주는 간언을 들을 수 없다. 간언을 듣지 못하면 나라의 폐단이 쌓여 백성들이 등을 돌린다. 그 점에 대해 장석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폐하께서는 색부의 말주변을 높이 사서 파격적으로 승진시키려고 하시는데, 신은 천하 사람들이 바람 따라 휩쓸리듯 말재주에만 지나치게 힘써 다투면서 실제적인 이익을 꾀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또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본받는 것은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고 메아리가 소리에 답하는 것보다 빠릅니다. 이 때문에 폐하께서는 누구는 임용하고 누구는 임용하지 않을 때 신중하게 하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_「장석지?풍당열전」
한나라 문제는 장석지의 말을 받아들여 색부를 등용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지도자와 정치인들이 귀감으로 삼아야할 모습이다. 간언하는 신하의 말을 바로 새겨들을 수 있는 통치자의 덕망과 소신을 굽히지 않고 바른 말을 할 수 있는 지식인의 직언이 있다면 그 사회는 건강하게 존속될 수 있다.
이 몸이 여덟으로 찢긴다 하여도 결코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다
옳은 일에 대해서는 옳다고 말하기 쉽지만 그른 일에 대해 그르다고 말하기란 쉽지 않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혼자 ‘아니요’라고 할 수 있는 용기가 바로 지식인이 견지해야 할 자세다. 사마천은 바로 모두가 ‘예, 예’할 때 ‘아니요’라는 직언을 한 죄로 권력자의 비위를 거슬러 궁형(거세형)이라는 치욕의 형벌을 받았다. ‘아니요’의 정신은 개인의 단순한 부정의식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총체적 인식이자 결연한 비판정신이다.
박정희 정권 때 시인 김지하는 당대 사회를 갉아먹는 부패한 정부 관료들을 ‘오적五賊’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풍자하는 시 「오적」을 발표해 반공법으로 체포되어 모진 옥고를 치렀다. 오적으로 비유된 관리들의 횡포를 모두 알고 있었지만 독재정권의 서슬에 눌려 지식인 모두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을 때 너희가 바로 나라의 도둑놈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그의 결기가 바로 지식인의 참 모습이다.
사르트르는 피지배계급과 연대해서 독재의 횡포에 맞서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했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맞섬’이란 구체적인 실천을 담보한 행동을 뜻한다. 말로만 떠드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 입증해야 한다. 한마디로 ‘지행합일’이어야 한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김지하가 ‘오적필화’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 받았을 때 사르트르를 위시한 세계적인 작가들이 구명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김지하는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은 자신의 나라는 물론 전 세계 모든 독재에 맞서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김지하 구명운동은 바로 그 주장을 몸소 실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지식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다. 마오쩌둥이 말한 지식인의 병폐는 바로 자신만의 안위를 위해 세상의 불의를 외면하는 지식인들의 무관심한 태도에 대한 구체적인 질타라 할 수 있다. 궁형宮刑의 치욕을 무릅쓰고 『사기』를 완성했던 사마천이 그의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지식인의 길이란 어떤 것인지를 절감하게 된다.
정말로 만일 이 역사서를 완성하여 이것을 명산에 비장해서 영원히 전하고, 또 이것을 사람들에게 전하여 천하의 대도시에 유포하는 일이 가능하다면, 그때야말로 내가 받았던 치욕은 보상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아무리 이 몸이 여덟으로 찢긴다 하여도 결코 후회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_「보임소경서」
거지근성으로 일관하며 남 핑계를 일삼는 졸렬한 지식인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사마천은 참 지식인의 전형이 무엇인지를 결연히 보여주고 있다. 지식인은 그 나라의 거울이다. 치욕을 모르는 사람,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위대해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