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의 사마천 한국견문록⑥] ‘문고리 3인방’ ‘십상시 모임’···아! 대한민국
측근을 경계한 링컨의 혜안
[아시아엔=이석연 전 법제처장, 변호사]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현재까지 우리는 열 분의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을 지켜봤다. 불행히도 국민의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청와대를 떠난 대통령은 한 분도 없었다. 여기서의 국민은 건전한 양식과 사회통념을 지닌 다수 국민을 이른다. 한국 대통령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대다수 국민들의 뜻을 저버린 대통령의 독선적인 인사정책이다. 직언하는 선비(참모)를 멀리하고 심기 편하게 할 측근들만 골라 쓴 데서 온 민심이반, 국정난맥이다.
어떤 권력자도, 비록 집권 초기에 명석함을 보일지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판단력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기 때문에 직언이 반드시 필요하다. 역대 대통령들의 재임기간을 돌아보면 그 주변에는 직언하는 사람보다는 청와대와 내각의 문고리를 쥐고 앉아 국정을 농간하는 무리들이 많았다. 이런 현상은 임기 말이 가까울수록 더 심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행태는 계속되고 있다.
링컨마저도 “대통령이 되자 나의 입장은 백팔십도 달라졌다. 나는 이제 적들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나를 위하는 체하면서 실제로는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적들 말이다”라고 한탄했다. 측근을 적으로까지 여겨 철저히 경계하겠다는 링컨의 혜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부성 발언과 더불어 대통령의 허물을 들춰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사람들의 비난만이 무성하고 국가의 장래를 위해 충정으로 직언을 하는 사람의 기개는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는 비난을 직언이라 위장하는 자들도 있다. 나라가 어지럽고 위태로워 직언을 꺼린다고 했던 이이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지금의 우리 현실에 비추어 헤아려보니 이해가 간다.
직언하는 신하 없이 성공한 군주는 없다. 그러나 직언하는 신하가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군주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사마천은 「태사공자서」에서 “거짓된 말을 듣지 않으면 간사한 신하는 생겨나지 않는다”고 했다. 군주란 직언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짓된 말을 구별하여 듣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록위마와 대한민국의 현실
조고가 모반을 일으키기로 하고는 신하들이 따르지 않을까 걱정되어 먼저 시험해보려고 사슴을 끌고 와서 이세 황제에게 바치며 말했다. “말입니다.” 이세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승상이 틀리지 않았소? 사슴을 말이라 하니 말이오.”_「진시황본기」
매년 연말이면 교수신문에서 설문조사를 통해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한다. 2001년부터 시작된 ‘올해의 사자성어’는 대한민국 사회가 어떤 지경에 처해있는 가를 아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마치 교황의 성탄 메시지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올해는 무엇이 선정될까 자못 궁금해 한다.
그간에 선정된 사자 성어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01년 오리무중五里霧中, 2002년 이합집산離合集散, 2003년 우왕좌왕右往左往, 2004년 당동벌이黨同伐異(잘잘못에 관계없이 자기와 같은 무리끼리는 한데 뭉쳐 서로 돕고 반대자를 공격하는 일), 2005년 상화하택上火下澤(불은 위로 타오르고 물은 아래로 흘러내려 서로 분열한다는 의미), 2006년 밀운불우密雲不雨(구름은 끼었으나 비가 오지 않는다는 뜻으로, 일이 성사되지 않은 것을 이름), 2007년 자기기인自欺欺人(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인다), 2008년 호질기의護疾忌醫(병을 숨기고 의원에게 보이기를 꺼린다), 2009년 방기곡경旁岐曲徑(옆으로 난 샛길과 구불구불한 길이라는 뜻으로 일을 그릇되고 억지스럽게 함), 2010년 장두노미藏頭露尾(머리는 감추었는데 꼬리는 드러나 있다는 뜻으로, 진실을 숨겨두려고 하지만 거짓의 실마리는 이미 드러나 있다는 의미), 2011년 엄이도종掩耳盜鐘(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뜻으로, 자기만 듣지 않으면 남도 듣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행동), 2012년 거세개탁擧世皆濁(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세상이 온통 혼탁하다), 2013년 도행역시倒行逆施(차례나 순서를 바꿔 행한다)가 선정되었다. 모두가 폐부를 통렬히 찌르는 말들이다.
2014년 올해의 사자성어로는 사슴을 일러 말이라 우기는 ‘지록위마’가 선정됐다. 진시황이 죽자 환관 조고는 태자 부소扶蘇를 황제로 세우라는 진시황의 유지를 숨기고 후궁의 소생인 어린 호해胡亥를 황제로 세워 실권을 장악했다. 승상이 된 조고는 어린 황제를 농락하며 자신의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다 급기야는 자신이 황제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조고는 모반에 앞서 신하들이 자신을 잘 따를지 의문이 들어 사슴을 끌고 와 왕 호해와 신하들 앞에서 말이라고 하였다. 호해는 그게 사슴이지 어찌 말이냐며 주변의 신하들에게 묻자 어떤 이는 침묵하고, 어떤 이는 말이라 하고, 어떤 이는 사슴이라 했다. 조고는 사슴이라 한 자들을 모조리 죽인 후 자신이 황제가 되려했지만 아무도 따르는 자가 없어 할 수 없이 호해를 살해하고 부소의 아들 자영子?을 옹립하였지만 결국에는 자영에게 죽임을 당했다.
2014년 대한민국의 정치현실에서도 ‘지록위마’의 웃지 못 할 촌극이 벌어졌다. 신문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정윤회 문건, 문고리 3인방, 십상시十常侍 모임’ 등의 표현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 호해를 마음대로 주물렀던 환관 조고의 횡포가 대한민국에서도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풍자한 사자성어 선정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사슴은 사슴이다. 그 자명한 진리를 왜곡하는 자의 말로가 어떤지는 이미 역사가 말해주었다. 정치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에서 사슴을 사슴이라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