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의 사마천 한국견문록17] 공자가 ‘미생’을 만나면 무슨 얘길 하실까?
[아시아엔=이석연 전 법제처장, (사)아시아기자협회 부이사장] 고집과 원칙은 가끔 구분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고집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바꾸지 않는 성미를 의미하고, 원칙이란 조직이나 집단에 속한 개인들이 조직과 집단의 유지를 위해 일관되게 지켜야 할 규칙을 뜻한다. 어린 아이가 고집을 부리는 것은 아직 사회적인 관계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도 고집을 부린다는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이 자신만의 세계를 고집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때 자신의 고집을 고집이라 인정하지 않고 원칙이라고 우긴다면 참으로 난감하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과 원활히 소통을 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화두 중에 하나인 ‘소통의 부재’란 바로 이런 배경 하에서 나온다. 역대 대통령들이 소통의 부재란 지적을 받은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원칙이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나는 조직 구성원들의 합의에서 나온다고 본다.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원칙은 바로 민심民心에서 나오는 것이다. 지도자의 통치원칙은 바로 국민들의 요구를 적절히 수렴해서 보다 나은 미래를 도출하려는 고민에서 나온다.
국민들의 요구, 즉 민심이란 바로 현실의 긴박한 상황을 반영하는 생존의 지표다. 그것은 늘 변화하기에 지도자가 귀와 눈을 열어 그때그때 살피지 않으면 파악할 수 없다. 민심이 원칙이라면, 그 원칙은 늘 변할 수밖에 없다.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인 원칙이란 있을 수 없다. 만약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종교적인 차원에서나 가능할 수 있겠다.
정치는 종교와 다르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 원칙만 고집해서는 국가의 대사를 경영할 수 없다. 국가의 지도자는 철학자나 종교인이 아니다.
관념과 사상으로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철학자들의 신념이나 자신의 도덕적 품성을 중히 여기는 종교인들의 태도는 국가의 경영에 있어 때로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춘추전국시대의 역사를 다룬 역사소설 『열국지』에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는 고사가 나온다. 송나라 양공襄公은 장군임에도 불구하고 쓸데없이 어진 척해서 전쟁에서 지고 말았다. 초나라 군사가 강을 건너 올 때 그의 부하인 공자목이公子目夷가 반쯤 건너 왔을 때 공격을 하면 승리할 수 있다고 하자 그것은 정정당당한 행위가 아니라며 일거에 의견을 묵살했다. 초나라 군사가 강을 건너와 어수선하게 진을 치고 있을 때 그 부하가 다시 공격할 것을 요구하자 “군자는 남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괴롭히지 않는 법이다”라며 또다시 거부했다. 결과는 뻔했다. 그리하여 송양지인이라는 말은 쓸데없는 폼을 잡다가 일을 그르치는 미련한 사람을 뜻하게 됐다.
전쟁에서 지고 이기는 것은 백성들에게는 사활이 걸린 문제다. 자신의 사사로운 신념이나 쓸데없는 고집에 집착하는 사람은 지도자 자격이 없다. 양공이 추구했던 인仁이라는 것은 사사로운 차원의 인이다. 진정한 인이란 바로 백성의 마음을 헤아리는데서 나온다. 그것이 지도자가 지켜야 할 원칙이다. 민심을 바탕으로 원칙을 세워 나라를 바르게 통치한다면 국민들은 그 지도자를 신의信義가 있다 여길 것이다.
허영스러운 말과 논리로써 자신의 신의와 영예를 세우는 사람들의 결말은 결코 좋지 않다. 연나라 왕에게 미생의 신의란 믿을 수 없는 것이라 논증했던 소진은 연나라 왕의 어머니와 사사로운 정을 통하고 있었는데, 그 사실을 왕이 알게 되자 죽게 될까 두려워 제나라로 갔다. 그는 떠나면서 자신의 진짜 속마음은 숨겨두고 제나라로 가서 연나라를 비중 있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했다. 사마천의 기술에 의하면 소진은 제나라에서 반간反間의 혐의로 죽었다고 되어있다. 소진은 뛰어난 술수와 권모로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정작 사람들로부터 신의를 얻지 못했다.
자신이 신실하지 못한 것이 왕의 복이라는 궤변으로 자신의 일시적인 영예를 구축했지만 끝까지 자신을 지키지는 못했다.
소진이 미생의 신의를 폄하했지만 미생의 신의는 고귀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것은 연인을 위해 다리 난간을 잡고 죽는 미생의 신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또 다른 미생의 신의다. 여기서 미생에 대한 공자의 평가를 원용한다.
“누가 미생고微生高가 정직하다고 말하는가? 어떤 사람이 식초를 빌리러 갔더니 (없다고 하지 않고) 이웃집에서 빌려다가 그 사람에게 주었더라.”( 『논어』, 공야장公冶長 24편) 여기서 미생고는 미생尾生을 말합니다. 공자가 정직하다고 소문이 나있던 미생을 평하고 있는 대목이다. 공자는 이 예를 들어 그가 정직하지 않다고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즉 미생의 이 행위는 얼핏 보면 아름다운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이는 남을 배려하고 비위를 맞춘 행동이지 사람으로서 곧은 행동은 아니라는 것이다. 공자는 현실주의자, 실용주의자였다. 융통성 없는 정직보다는 임기응변을 발휘해 사태에 대처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보았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