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의 사마천 한국견문록 ?] 박지원 대북송금 구속·김정은 장성택 숙청 그리고 ‘징비록’ 유성룡의 혜안

[아시아엔=이석연 전 법제처장] 2003년 박지원 의원이 대북송금사건 의혹으로 구속되면서 조지훈 시인의 시 ‘낙화’ 중에서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라는 구절을 읊은 심정도 괴통의 처세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인자에 대한 충성과 함께 변화된 현실의 사태를 파악하여 자신의 자세를 낮출 수 있는 처세의 지략이 2인자에게 필요한 철학이다. 한신에게 간언한 괴통이 유방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나, 김대중 정권에서 권력의 실세로 군림했던 박지원 의원이 지금까지 정치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현실의 흐름을 읽고 그에 맞춰 응변의 자세를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눈앞의 적은 함께 격퇴할 수 있지만 차후의 공功은 함께 나누기 어렵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욕망 때문이다. 북한의 김정은이 장성택을 제거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김정일은 자신의 사후에 김정은을 보필할 인물로 김경희와 장성택을 꼽았다. 이는 장성택에 대한 김정일의 믿음이 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장성택은 김정은 집권 초기 권력 공고화에 상당한 역할을 수행했지만 결국 김정은에 의해 숙청당했다. 나이 어린 김정은이 북한의 권력 구조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노련한 인물이 필요했는데 그가 바로 장성택이었다. 김정은이 장성택의 도움으로 자신의 취약한 기반을 확충하자 이제는 그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여겨 토사구팽을 했는데, 이는 월나라 구천이 오나라의 부차를 격퇴하고 나서 자신에게 도움을 줬던 문종과 범려를 내친 것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이방원이 왕이 된 후 이숙번을 제거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방원이 1, 2차 왕자의 난을 제압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숙번 덕택이었다. 태종에 등극한 이방원은 이숙번을 일등공신으로 삼았지만 한편으로 그의 기개와 혈기가 앞으로 자신의 후계자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 생각하여 늘 그를 경계하였다. 그러던 차에 주변에서 이숙번이 자신의 공로를 빙자해 방자함과 무례함을 일삼는다는 탄핵과 상소가 빗발치자 그것을 계기로 이숙번을 관직에서 삭탈시키고 귀양을 보낸다.

반면 하륜은 태종의 성정을 잘 알고 있었으며 자신의 공로가 군주의 권위를 넘어서지 않도록 늘 언행을 조심하였기에 자신의 안위를 지켜낼 수 있었다. 괴통의 말대로 공로는 천하에 둘도 없는 법이다. 이러한 토사구팽의 전횡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역사 곳곳에서 목도가 되는 이유는 바로 인간의 욕심 때문이다.

이순신과 권율을 등용해서 임진왜란의 국난을 극복할 수 있게 만들었던 유성룡은 그의 공로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일본과 연합해 명나라를 치려한다는 북인들의 모함을 받아 관직에서 삭탈되어 고향인 안동 하회로 내려가게 되었다. 낙향을 한 유성룡은 아이들에게 “사람들이 이욕利慾에 빠져 염치를 잃어버리는 것은 모두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느 곳이든지 살 수 있다”며 청렴의 중요성을 가르치며 지낸다. 낙향 후 누명이 벗겨져 다시 관직이 회복되었지만 그는 정계에 복귀하지 않고 저술에 몰두한다. 선조는 백성들의 삶보다는 왕가의 보존에만 신경을 쓰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인물이라는 것을 유성룡은 간파한 듯하다.

범려가 구천의 인물됨을 파악하여 그와는 즐거움을 같이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월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간 것처럼 유성룡도 고향에 머물며 종국에는 <징비록>懲毖錄이라는 명저를 우리에게 남길 수 있었다.

앞에서 2인자로 언급한 범려, 문종, 한신 그리고 괴통의 삶에 대한 평가는 보는 이의 입장에 따라 긍정적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한 사정은 구천이나 유방과 같은 1인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1인자나 2인자라는 권력의 위치나 서열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실존적 입장에서 ‘나의 과욕’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범려와 괴통 그리고 유성룡은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들이 파악한 인간이란 바로 ‘욕망하는 존재’, 즉 이익을 따라 이합집산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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