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스리랑카 불교-이슬람 갈등, ‘평화언론’이 풀어야
살생을 금하는 팔리어 경전을 따르는 소승불교 국가 스리랑카와 미얀마 불교신자들이 저지른 폭력은 자비와 평화의 상징으로 알려진 불교 명성에 먹칠을 했다. 사태의 주범은 스리랑카 보두 발라 세나 종파 신자들과 미얀마 969운동 추종자들이다. 국가와 종교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스리랑카 신할라 불교신자들은 타밀 소수민족을, 미얀마 라킨 불교신자들은 로힝야 이슬람교 신자들을 무참히 살해했다.
네팔 정부·불교 교단·아시아 언론인들은 부처가 탄생한 성지 룸비니에서 부처의 ‘평화와 자비’를 계승하기 위해 룸비니 선언을 발표했다. 룸비니 선언은 불교도들이 세속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현시점에서 시기적절하다. 우 위라수 수도원장 주도 하에 미얀마 전역에서 자행되는 969운동은 이슬람신도들을 탄압하고 있다. 969 운동은 이슬람교도들을 방글라데시에서 건너온 불법이민자로 여기는 미얀마 정부 덕분에 활개치고 있다. 미얀마는 내부갈등으로 민주주의 발전과 국가통합에 차질을 빚고 있다. 종교 갈등은 국가를 재건 중인 스리랑카 정부에도 걸림돌이다.
이는 일부 불교 종파의 ‘배타성’에 기인한다. 때문에 스리랑카 언론은 사회질서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웅산 수치도 민족화합과 법치주의를 지지한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 떼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 역시 969운동 주모자 우 위라수 수도원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최근의 집단학살은 ‘인간의 탐욕스러운 본성으로 인해 발생한 괴로움(dukka)’을 드러낸 안타까운 사례다. 불교 핵심 교리 중 하나인 팔정도에 해결책이 담겨 있다. 요지는 ‘마음챙김(mindfulness)’이다. 자신이 행한 행동과 그 이유에 대해 성찰하고, 마음을 돌봐야 한다. 이로써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여론을 가까이서 접하는 언론은 사회의 균열과 집단 간 불신·불화에 대해 성찰하고 근원을 파악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언론의 도(道)> 저자 셸튼 구나랏네는 언론이 부처의 가르침을 적용해 사회갈등을 치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화언론은 종교분쟁에 시달리는 스리랑카와 미얀마 주민들을 평화로운 열반의 길로 인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