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 칼럼

    아침해와 빗방울…권리인가? 은혜인가?

    해는 악인과 의인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비도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를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합니다. 똑같이 받았는데 어떤 사람은 악인으로 살고, 어떤 사람은 선인으로 삽니다. 똑같이 받았는데 어떤 사람은 의롭게 살고, 또 어떤 사람은 불의하게 삽니다. 뜨는 해를 보며 누구는 은혜라고 생각하는데, 누구는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내리는 비를 보며 누구는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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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화평과 진리’ 두 레일을 묶는 침목, ‘사랑’

    무엇이 두 레일 사이의 생명과도 같은 거리를 조율하고, 그 아슬아슬한 균형을 지켜낼까요? 바로 침목(枕木)입니다. 철로의 두 레일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침목이 깔려 있습니다. 두 레일의 거리를 유지하고, 레일의 어마어마한 무게와 진동을 온전히 견디는 것이 침목입니다. 성경은 그 침목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 말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본문에서 “…오직 너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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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고마운 사람들’…레슨비 없이 ‘가지 말아야 할 길’ 선명하게 보여주는 이들

    교만한 이들을 보며 겸손을 배웁니다. 거짓을 말하는 이들을 보며 정직을 배웁니다. 타인의 노력과 성취에 대해 습관적으로 비아냥거리는 이들을 보며 나의 입술을 다시 한번 점검합니다. 질투와 시샘이 많은 이들을 보며 내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법을 배웁니다. 쉽게 타인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이들에게서는 자기 성찰을 배웁니다. 이 얼마나 유익합니까? 게다가 레슨비가 무료입니다.-본문에서 사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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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정의, 아무리 정의로워도 고이는 순간 썩어

    ‘액체 정의, 고체 정의’…”문제는 정의의 부재가 아니라, ‘정의의 독점’입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아모스 5:24) 이 시대에 정의가 없는가? 아닙니다. 오히려 넘쳐납니다. 각종 SNS와 언론, 강의는 정의를 외치는 목소리로 가득합니다. 문제는 정의의 부재가 아니라, ‘정의의 독점’입니다. 아모스 선지자의 외침처럼 정의는 물같이 흘러야 정의이고 공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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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ncategorized

    아침이슬처럼 맺힌 은혜

    이스라엘의 건기에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지만, 그럼에도 식물들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밤사이 맺히는 이슬 덕분입니다. 이슬은 비와는 또 다른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비는 존재감이 큽니다. 비가 내리면 빗소리가 납니다. 비는 아무도 모르게 내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슬은 소리 없이 맺힙니다. 비는 어디서 오는지가 분명하지만, 이슬은 어디에서 왔는지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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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소명’과 ‘사명’ 따라 일하는 게 얼마나 큰 자유로움인지…

    다니엘은 맹렬한 풀무불 속에서 친구들을 지키시는 진짜 왕의 권능을 보았습니다. 제국이 제공한 부와 권력은 그때 풀무불과 함께 다 타 버린 것입니다. 진정한 왕의 권능을 맛본 다니엘에게 벨사살 왕의 선물은 소꿉놀이 세트와 같지 않았을까요? 어릴 적엔 왕의 음식을 거부했던 다니엘이었습니다. 그는 이제 왕의 예물도 거절합니다. 다니엘은 출세를 위해 실력을 발휘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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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담을 쌓은데 가장 중요한 수치는 높이? 그런데…

    담을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수치는 무엇일까요? 높이입니다. 폭이나 길이는 그다음 문제입니다. 그런데 에스겔서에 나온 성전의 담에는 높낮이 수치가 하나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더 이상한 점은 그 담의 존재 목적에 있습니다.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에스겔 42:20)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기 위한 담인데 높이 정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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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디어

    잠깐 멈춰 ‘카이로스’를 헤아려 보는 지혜

    카이로스 “아홉째 해 열째 달 열째 날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겔 24:1) 에스겔은 매일같이 날짜를 세어 보며 살았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말씀이 자신에게 임했던 시점의 날짜를 매번 정확하게 기록합니다. 이것이 에스겔서 기록의 특징입니다. 에스겔은 지금 세계 최강대국 바벨론의 포로입니다. 당연히 그 땅에는 바벨론의 달력이 있었고, 제국의 위엄을 드러내는 그들만의 연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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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석문섭 칼럼] 진정한 ‘갓생(God-生)’이란…

    안식일은 자율적 휴일이 아닙니다. 강제 휴일입니다. 일하고 싶어도 하면 안 되는 날입니다. 자유롭게, 자기 재량에 따라 시간을 쓰는 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에는 작은 것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즉,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시간이 안식일입니다. 그래서 비로소 ‘내 욕심이 쉬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본문에서) “욕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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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아시아

    2600년전 에스겔의 4가지 생물 환상과, 21세기 자본·권력·최첨단 기술문명과…

    에스겔의 네 생물 환상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겔 1:10) 포로 생활 5년 차, 고향의 성전에서 영광스럽게 직무를 수행해야 할 나이의 제사장 에스겔에게 바벨론의 현실은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바벨론 곳곳에 세워진 신상들이 유대인 포로들을 비웃고 조롱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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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떠나야 할 곳에 미련을 두면 ‘소금기둥’이 되지만…

    돌아가야 할 곳에 마음을 두면 ‘세상의 소금’이 됩니다” 중세 프랑스 필사본 삽화(1280년경)로 롯의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된 장면을 오래된 스타일의 그림으로 담아내고 있다. “칼을 피한 자들이여 멈추지 말고 걸어가라. 먼 곳에서 여호와를 생각하며 예루살렘을 너희 마음에 두라”(렘 51:50) 70년이 흘렀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설움을 삼켰지만, 어느덧 3세대가 지나며 바벨론은 삶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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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소명’에 대한 꺼지지 않는 ‘열정’

    예레미야가 평생을 근심하며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의 삶의 표면은 눈물자국 투성이였지만, 그의 무게 중심에는 진정한 평안과 빼앗기지 않는 기쁨이 있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음껏 슬퍼하고 근심할 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명에 대한 꺼지지 않는 열정을 마치 구명조끼처럼 입고 있었기에 그는 타인의 고통과 세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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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노이즈 캔슬링’…”소음으로 소음을 지우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내는 소리에 귀가 익숙해지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가 먹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음과 잡음처럼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탐욕이 제공하는 완벽한 노이즈 캔슬링 서비스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더 이상 말씀이 즐겁지 않다면 한 번 진지하게 점검해 봐야 합니다.-본문에서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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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집으로…’제자리’로 돌아가다

    군인들이 왜 그토록 전역을 손꼽아 기다릴까요? 단지 고된 시간이 끝나기만을 바래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집에 돌아갈 날을 기다립니다. (중략) 우리가 이 땅을 살며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리는 이유는 돌아갈 곳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 아닐까요? 혹은,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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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등불은 가능성이 없다?

    인간에게 ‘가능성’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는 언제나 가능성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가능성을 따지고 계산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가능성 있는 사람에게 투표를 하고,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있어야 투자하며, 사람을 뽑을 때에도 그의 가능성을 평가합니다. 인간은 가능성을 가지고 자신과 세상을 구성하는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절망이란 무엇일까요? 가능성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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