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섭 칼럼] 진정한 ‘갓생(God-生)’이란…

“욕심의 노예인 우리에게는 강제 안식이 필요합니다”
“또 내가 내 손을 들어 광야에서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그들에게 허락한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지 아니하리라 한 것은 … 그들이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음이라”(겔 20:15-16)
‘젖과 꿀이 흐른다’, 풍요의 상징적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그 풍요로움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풍요를 풍요답게 누리기 위한 전제조건이 ‘안식’이라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풍요가 확보되어야 쉼도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 순서를 뒤집으십니다. 쉴 줄 모르면 풍요조차 무거운 짐입니다. 소유의 넉넉함이 자동으로 쉼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자율적 휴일이 아닙니다. 강제 휴일입니다. 일하고 싶어도 하면 안 되는 날입니다. 자유롭게, 자기 재량에 따라 시간을 쓰는 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에는 작은 것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즉,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시간이 안식일입니다. 그래서 비로소 ‘내 욕심이 쉬는 날’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욕망을 강제로라도 멈춰 세울 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선물로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모든 걸 다 보상으로 여기곤 합니다. 보상에는 감사도 감동도 없습니다. 보상에 잘못 길들여지면 우리는 내 힘으로 더 많은 젖과 꿀을 확보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다가, 이미 가진 풍요마저 집어삼키는 괴물이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은 더 이상 감사의 대상이 아니라, 나를 입증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가진 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고, 남들보다 더 갖지 못할까 봐 조급해합니다. 결과적으로 ‘젖과 꿀’ 그 자체가 하나님을 대신하는 우상이 되어버리고, 우리는 그 풍요를 지키기 위해 더 치열하게 자신을 채찍질하는 노예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갓생(God-生)’에는 안식이 없습니다. 자기 힘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건설하려 하지만 그 결과는 에덴동산이 아니라 에녹성입니다. 결국 자신의 성취에 갇혀버리는 비극, 이것이 안식을 잃어버린 풍요가 맞이하는 필연적 귀결입니다.
욕심의 노예인 우리에게는 강제 안식이 필요합니다. 바쁜 하루이지만 잠깐이라도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잠깐 멈춘 시간 속에서 우리는 발밑에 이미 흐르고 있던 젖과 꿀을 비로소 발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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