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체 정의, 고체 정의’…”문제는 정의의 부재가 아니라, ‘정의의 독점’입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아모스 5:24)
이 시대에 정의가 없는가? 아닙니다. 오히려 넘쳐납니다. 각종 SNS와 언론, 강의는 정의를 외치는 목소리로 가득합니다.
문제는 정의의 부재가 아니라, ‘정의의 독점’입니다. 아모스 선지자의 외침처럼 정의는 물같이 흘러야 정의이고 공의는 강같이 흘러야 공의입니다. 흐르지 않는 정의는 이미 정의가 아닙니다. 정의가 아무리 정의로워도 고이는 순간 썩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정의가 흐르는 액체라는 사실에 불편함을 느끼는지도 모릅니다. 내 손으로 움켜쥘 수 있는 무언가이기를, 나 혼자 소유할 수 있는 딱딱한 고체이기를 원합니다. 정의를 외치는 자들은 그토록 많은데, 도리어 혼란과 분열만 깊어지는 건 어찌 된 영문일까요? 흘러야 할 정의를 딱딱하게 굳히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나의 논리만이 유일하게 ‘옳은 것’이라 굳히는 순간, 정의는 흐름을 멈추고 고여 버립니다.
이렇게 고여 버린 정의는 반드시 권력의 수단으로 변질됩니다. 처음에는 세상을 바로잡으려 했던 순수한 열정이었을지 몰라도, 갇힌 정의는 이내 욕망의 명분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기득권의 불의에 맞서 싸웠던 공로는 도리어 또 다른 기득권을 형성하는 기반이 되어 버립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세운 정의의 기념비를 숭배하며, 그 기념비 앞에 고개를 조아리지 않는 모든 움직임을 불의로 돌려세웁니다.
‘나는 선한 편’이라는 달콤한 확신, 이 자기 의의 웅덩이에 발을 담그는 순간, 정의는 흐르기를 멈춥니다. 더 이상 정의는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정당화하는 방어 기제가 됩니다. 정의를 부르짖을수록 점점 더 편협해지는 역설, 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입니까? 세상을 향해 흘러가야 할 강물이 나 자신이라는 좁은 우물 안에 갇혀, 자기 연민과 자기 합리화의 녹조를 피워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활동했던 여로보암 2세 시대는 북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번영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많은 종교인과 정치인이 저마다의 의로움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번영이 곧 하나님의 인정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로움을 독점하려 정의를 가두어 버린 그들의 웅덩이를 터뜨리십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강물과 같습니다. 물은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해 흐릅니다. 그 물을 가두어 놓은 나의 웅덩이는 정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거대한 근원에 연결되어 있을 때만 정의는 썩지 않습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아모스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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