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되라”
중학교 3학년 소녀가장이었던 정양은 자신에게도 미래가 있을까 스스로 물으며 짧은 유서 한 장을 남겼다. “차라리 고아로 태어났으면 좋았을걸…. 차라리 거리의 풀 한 포기로 태어났으면 좋으련만…. 차라리 바람에 휘날리는 모래 한 줌으로 태어났으면 좋으련만….” 한 여중생이 남긴 이 유서는 내 청소년 사역의 출발점이 되었다.
‘만약 이 아이가 예수님을 알았다면, 예수님을 믿었다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등지지는 않았을 텐데….’ 그날 이후 나는 청소년들에게 복음의 빚진 자로 살아야 한다는 사명을 품게 되었다.
지금 고려인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단순히 한국 생활에 적응하도록 지원하는 일이 아니다. 어떤 현실에서도 누군가에게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일어나 자립할 수 있는 힘과 미래를 향한 희망을 심어주는 일이다. 나는 그것이 복음이라고 믿는다. 아이들이 복음을 통해 하나님 안에서 꿈을 발견하고 세상을 이기는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돕고 싶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학생들과 학교를 떠나 비전캠프를 진행한다. 그러나 올해는 조금 다른 캠프를 준비했다. 그동안 고려인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며 그 결과에 책임지는 리더를 세우고 싶었다.
그렇게 2026년 7월, 한여름의 동해 묵호에서 2박 3일간의 리더스캠프가 시작되었다. 이번 캠프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예수님의 리더십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교육이었다. 경제교육은 오래전 초등학생이던 두 딸과 함께했던 ‘머니캠프’를 바탕으로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게 새롭게 구성했다. 예수님의 리더십을 통해 헌신과 배려를 배우고, 한국 사회에서 건강한 세계시민으로 살아가며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자립심을 기르는 것이 목표였다.
나는 우리 학교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전동기 선생님에게 특별한 부탁을 했다. 전 선생님은 어려운 아동·청소년기를 이겨내고 자수성가한 분이다. 현재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pplied Materials Inc.) 한국지사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이번 리더스캠프에도 함께 하려 했지만 회사일이 너무 바뻐서 시간을 내기가 너무 힘들다고 해 이번에는 리더가 갖추어야 할 여러가지 소양에 관한 자료를 부탁드렸다. 이에 프레젠테이션 자료까지 정성껏 준비해주었다. 나는 이를 통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동물 캐릭터 이야기로 공동체를 이끄는 리더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전동기 선생님 덕택이었다. 이번 캠프에는 김포 구원의감격교회 조현수 목사님과 오필준 부장 선생님도 함께하며 힘을 보태주었다.
학생들은 출발 한 달 전부터 팀을 구성해야 했다. 나는 한국어 수준을 고려해 팀을 편성했고, 숙소도 교사들과 상의해 배정했다. 그러나 현지에서 수행할 미션만큼은 아이들이 스스로 계획하도록 했다. 어디를 갈 것인지, 무엇을 배울 것인지, 어떻게 이동할 것인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직접 탐색하고 결정해야 했다. 다만 반드시 팀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원칙에는 예외를 두지 않았다. 물론 내가 정한 팀과 숙소가 모든 아이의 마음에 들 리는 없었다. 그래서 이 과정에 경제교육을 연계했다.
출발 전 학생들에게 가상의 화폐 100만 원씩을 지급했다. 캠프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이 돈으로 해결하게 했다. 남은 금액은 실제 현금으로 교환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남은 돈으로 무엇을 할지 벌써부터 계산하는 모습이었다. 교사들과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지출 항목과 수입 항목도 정했다.
교통비 10만 원, 식사비 5만 원, 호텔비 20만 원은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기본 경비였다. 나는 이를 부모님의 사랑에 비유해 설명했다. “부모님은 돈이 아깝다고 자녀에게 밥을 먹이지 않거나 학교에 보내지 않는 분들이 아니다. 꼭 필요한 곳에는 반드시 돈을 쓰신다. 이것이 책임이고 사랑이다.” 반면 좋아하는 친구와 같은 팀을 선택하거나 같은 숙소를 사용하고 싶다면 각각 20만 원을 추가로 내도록 했다.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지출과 욕심에서 비롯된 선택의 지출을 구분해 보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원칙도 세웠다. 모든 학생은 지급받은 100만 원 가운데 5%인 5만 원 이상을 반드시 나눔에 사용해야 했다.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도 함께 돌아보는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많은 돈을 남겨도 나눔 포인트가 20점 미만이면 현금으로 교환할 수 없도록 했다. 친한 친구를 돕는 것은 나눔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넘어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해야 나눔 포인트를 받을 수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지출 항목을 들은 아이들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가득했다. 그러나 수입 항목을 설명하기 시작하자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식사 때마다 성경 구절을 암송하면 5만 원, 약속을 잘 지키거나 미션에 성공하면 다시 5만 원씩 지급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많이 벌어서 현금으로 바꾸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그 결심은 출발하는 버스에서부터 시험대에 올랐다. 스타렉스를 탈 것인가, 편안한 미니버스를 탈 것인가.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앉을 것인가, 지정된 자리에 앉을 것인가. 선택할 때마다 비용이 발생하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처음으로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원래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팀별로 이동할 계획이었지만, 배차 간격 문제로 15인승 렌터카와 스타렉스에 나누어 타고 이동하게 되었다. 문제는 스타렉스의 에어컨이 시원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잠시 고민한 뒤 나는 스타렉스를 선택하는 팀에 나눔 포인트 10점을 주겠다고 말했다. 가장 먼저 손을 든 샤샤팀은 나눔 포인트를 얻고 교통비도 내지 않았지만, 다른 팀들은 교통비를 내야 했다.

아이들은 벌써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설계한 경제교육이 조금씩 작동하고 있었다. 성경 암송도 리더십이라는 주제에 맞춰 수준별로 준비했다. 헌신과 배려를 담은 말씀을 외우면 수입을 얻도록 했다.
생각해 보면 한국의 많은 부모는 가난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평생 헌신하며 살아간다. 고려인 부모들도 다르지 않다. 갑작스러운 이주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의 빚을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고려인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경제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돈을 버는 능력뿐 아니라 꼭 필요한 곳에 쓰고, 다른 사람과 나눌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하다. 헌신과 배려를 배우고 건강한 경제관을 갖춘 사람이야말로 공동체를 이끌 수 있는 진정한 리더이기 때문이다.
떠들썩하던 버스 안은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백미러로 뒤를 바라보니 아이들의 손에는 성경 구절이 적힌 종이가 들려 있었다. 입술은 쉼 없이 말씀을 되뇌고 있었다. 점심 식사 전까지 암송을 마치면 5만 원을 벌 수 있기 때문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은 스스로 말씀을 외우기 시작했다. 식당이 가까워질수록 아이들의 암송 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비록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암송이지만, 결국 아이들의 마음속에 남는 것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일 것이라고.
경제교육의 목적은 단순히 돈을 잘 버는 사람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돈을 바르게 사용하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며, 다른 사람과 나눌 줄 아는 사람을 세우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다.
그렇게 우리 리더스캠프의 첫 번째 미션은 조용하지만 힘차게 시작되고 있었다. (2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