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 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마태복음 22:11)
왕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그런데 초대받은 사람들이 ‘노쇼’를 합니다. 심지어 초대하러 보낸 왕의 신하들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거리로 나가 아무나 데려오라고 명합니다.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마 22:10) 이 초대는 악한 자와 선한 자를 가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 초청의 놀라운 신비입니다. 인생을 잘못 산 사람도 초대를 받습니다. 그리고 먼저 온 사람과 나중 온 사람이 동일한 대접을 받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다 초대했다면 다 받아줘야 하는 것 아닐까요? 왕은 잔치를 둘러보다가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발견하고는 그를 쫓아냅니다. 이야기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입니다.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모두 오라고 해놓고, 그깟 예복 하나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쫓아낸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당시에는 독특한 잔치 문화가 있었습니다. 왕처럼 높은 신분의 사람이 잔치를 열 때, 손님들에게 입고 올 예복을 미리 보내주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예복이 일종의 초대장이자 ‘드레스 코드’였던 셈입니다. 특히 왕이 주최하는 큰 연회에서는 참석자들에게 통일된 의복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본래 출신 배경과 상관없이 모두가 ‘왕의 손님’이라는 동등하고 단일한 정체성을 갖게 했습니다.
따라서 주인이 보내준 예복을 입지 않고 잔치에 나타나는 것은 단순히 옷을 갖춰 입지 않은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나는 당신이 준 옷 따위는 필요 없다. 내 옷만으로도 충분히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다.’라는 교만이자, 주인의 호의를 정면으로 짓밟는 무례한 행동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천국 잔치에 우리를 초대하시며 예복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예복은 무엇일까요?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라디아서 3:27)
우리는 모두 저마다 자기 옷을 입고 살아갑니다. 평생에 걸쳐 내가 이룬 성취, 내가 쌓은 경건, 내가 확립한 신념이라는 ‘자기 옷’을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천국 잔치에서는 그 모든 옷이 무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옷이 비단인지 누더기인지에 전혀 관심이 없으십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예복을 입었는지에만 관심을 두실 뿐입니다. 천국은 내 옷 자랑 하는 곳이 아닙니다. 주인이 선물한 옷을 그저 감사함으로 입고 참여하는 잔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