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깐묵상 | 사도행전 3장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행 3:4)
ADHD(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증상은 비단 정신의학 영역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도 심각한 ADHD를 앓고 있습니다. 본질에 대한 주의력은 잃어버린 채 집중하지 않아도 될 수많은 비본질적 사안들에 과잉행동을 보이는 교회와 성도가 적지 않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 충만을 경험하자 그들에게 가장 먼저 ‘한 영혼에 대한 주의력’이 생겼습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하반신 마비 장애인은 그날만 거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예전 같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그날은 그에게 눈길이 머문 것입니다. 평소에는 돈이 있어야만 그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를 주목하게 되자 그에게 줄 수 있는 더 좋은 것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행 3:6)
이 주의력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나서는 이야기와도 맥을 같이 합니다. 어떻게 아흔아홉의 양을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설 수 있을까요? 남은 아흔아홉이 계속 신경 쓰인다면 결코 한 마리를 찾아 나설 수 없습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이 겪고 있을 두려움과 불안에 온전히 몰입하느라 나머지 아흔아홉이 생각나지 않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경영이나 경제의 논리에서는 더 이상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아흔아홉을 ‘관리’하는 쪽을 택하고 하나를 손절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교회는 다수를 지킨다는 명목 아래 수많은 관리 시스템과 프로그램을 돌리며 끝없는 과잉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정작 잃어버린 하나를 향한 주의력은 결핍된 전형적인 ADHD입니다.
이 질병의 유일한 처방은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능력이란 단 한 영혼을 향해 무섭도록 몰입하는 집중력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다수를 내버려 두면 남은 양들이 죽을 것이라며 ‘관리의 정당성’을 변명하지만 영적 실상은 그 반대입니다.
아흔아홉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하고 피곤한 ‘관리’가 아닙니다.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잃어버린 하나가 돌아오는 기쁨에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애초에 아흔아홉 역시 그런 식의 ‘무모한’ 집중을 통해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의 관리가 아흔아홉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살아나는 것을 보는 감격이 다수의 영혼을 깨웁니다.
비본질적인 것에 대한 과잉행동을 멈추고 한 영혼에 집중하는 것, 성령께서 우리 모두를 살려내는 역설입니다.
🎧잠깐묵상 유튜브로 듣기
https://youtu.be/1sm7dV3T75s?si=OI1gstYq7ksvL_b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