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깐묵상 | 요한복음 12장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요 12:5-6)
제자들 중에서 가장 크게 사회 정의를 부르짖은 사람은 가룟 유다였습니다. 가난한 자를 향한 분배의 정의, 자본의 효율적 사용, 마리아의 낭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까지, 그의 논리는 완벽하게 정의로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논리의 이면을 단 한 마디로 폭로합니다. “그는 도둑이라.”
큰 도둑일수록 정의를 사랑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의를 말하는 것을 즐깁니다. 그래야 더 많이 훔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마리아가 향유를 붓는 순간, 자신이 챙길 수 있었던 마진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몫을 가로챈 마리아에게 화가 났습니다. 마리아를 ‘가난한 자들에게 돌아갈 몫을 가로챈 사람’으로 낙인찍어 버립니다.
마리아의 행동에는 어떠한 계산도 없었습니다. 유다는 이 순수함을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이해관계로만 파악하는 도둑의 세계에서 계산 없는 헌신은 자신의 세계관을 붕괴시키는 위협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마리아의 진심을 정의의 언어로 짓밟은 것입니다.
교회와 사회에서 정의를 지나치게 그리고 유독 날카롭게 강조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언제나 성경적이고 합리적이며 틀린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날카로운 논리의 칼끝이 지나간 자리마다 피가 낭자합니다. 질서가 세워지기는커녕 공동체가 찢겨나갑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이 무언가를 훔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의라는 칼을 든 강도이기 때문입니다.
내면에 은혜가 고갈될수록 타인을 향해 정의를 크게 짖어댑니다. 무언가를 강박적으로 비판하고, 타인의 눈에서 발견된 티를 참지 못하며, 입만 열면 개혁과 정의를 부르짖고 있다면 스스로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이 완벽한 논리를 무기 삼아 나는 무엇을 훔치고 있나?’ 훔칠 수 있는 게 돈만이 아닙니다. 권력이나 통제감, 우월감은 돈 이상으로 매력적입니다.
정의를 내 손에 쥐는 순간, 그것은 반드시 권력이나 기득권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이것이 세상이 이루는 정의의 한계입니다. 예수님이 정의의 칼을 쥐는 대신 십자가에서 희생양이 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진정한 정의는 내가 희생하고 손해 보는 만큼 세워집니다. 예수님은 요란하게 정의를 증명하는 대신 말없이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함으로써 ‘의’를 이루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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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dP4UdEeARmA?si=F6src2oBA0SHe7n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