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왕부정거리에서 한 시간 반쯤 머물렀다. 벤치에 앉아 있는데, 흰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옆에는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동료가 앉아 있었다. 마이크도 없었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었다.
외국의 거리에서 무명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귀담아듣는 일은 드물다. 대부분 모르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는 노래가 나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산타루치아’가 들려왔다. 테너의 목소리였다. 다음 곡에서 나는 귀를 의심했다. 윤극영이 작곡한 ‘반달’이었다. 중국어로 2절까지 불렀다. 나는 손뼉을 크게 쳤다.
초등학교 시절 음악책에 실려 있던, 너무나 익숙한 노래였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었을까. 어린이날 특집 프로그램이었을까. 텔레비전에서 윤극영 선생을 본 기억도 난다. 머리가 벗겨진 할아버지였다. 어린이들과 함께 ‘반달’을 부르고 있었다.
공중보건의사로 경남에서 3년간 근무할 때는 모내기를 해본 적도 있다. 당시에는 대통령이 모내기하는 장면이 뉴스에 자주 나오곤 했다. 도시에서 자란 내가 바지를 걷고 논에 들어가자, 동네 사람들은 혹시 의사 선생이 허리라도 다치면 안 된다며 모를 심는 대신 옆에서 못줄을 잡으라고 했다.
사람들은 모를 심으며 노래를 불렀다. 장단에 맞추어 한 줄씩 모를 심었다. 대부분 내가 모르는 노래였다. 사투리가 섞인 가락도 있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노래는 ‘푸른 하늘 은하수’ 정도였다. 그때 들었던 노래와 왕부정거리에서 들은 노래가 어느 순간 겹쳐졌다.
3박 4일 여행의 마지막 저녁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나는 앞자리로 갔다. 그날 광장에서 중국어로 들었던 노래를 이번에는 우리말로 불러드리겠다고 했다. 그동안 간식이며 과일이며 이것저것 챙겨주었던, 우리와 나이가 비슷한 다른 가족들에게 작은 답례를 하고 싶었다.
배가 불러 성량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가사는 잊지 않고 끝까지 불렀다.

집에 돌아와서야 ‘반달’이 중국에서 불리는 까닭을 알았다. 윤극영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음악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그리고 1950년 중국의 조선족 음악인이 ‘반달’을 중국어로 번역해 ‘소백선(小白船)’, 즉 ‘하얀 쪽배’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작자 미상으로 알려진 이 노래는 중국에서 오랫동안 어린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한때 중국의 음악 교과서에도 실렸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f25ogwpaIPA&list=RDf25ogwpaIPA&start_radio=1
나중에 작곡자가 윤극영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교과서에서는 사라졌지만, 노래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나는 한국에서 ‘반달’을 배웠는데, 중국의 거리에서 중국어로 부르는 ‘반달’을 다시 만났다. 서로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같은 멜로디를 각자의 언어로 부르고 있었다.
윤극영 선생은 1988년 11월 15일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 무렵 나는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있었다. 같은 병원에 있었으면서도 직접 뵙지는 못했다. 아쉽다. 그러나 나는 그분의 노래를 여태 수천 번 불렀다. ‘반달’도, ‘설날’도, ‘고드름’도, ‘따오기’도, ‘기찻길 옆’도, ‘고기잡이’도.
어쩌면 사람은 꼭 직접 만나야만 만나는 것은 아닌지도 모른다. 왕부정거리에서 들은 중국어 ‘반달’은 어린 시절 음악책 속에서 만났던 노래 한 곡을 다시 내게 돌려주었다. 하얀 쪽배는 국경을 몰랐나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