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기자협회 창립 20주년] 캄보디아 ’60여년 기다린 동남아시안게임, 길이 남을 자부심으로’
아시아기자협회(Asia Journalist Association, 이하 아자)는 2004년 11월 창립된 국제언론인 단체로, “한 줄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피와 땀을 아끼지 않는다”는 모토 아래 공정보도·언론자유 수호·저널리즘 발전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자는 창립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협회 20주년 주요사와 동남아시아 및 중앙아시아 권역 협업 콘텐츠인 회원국 20년 주요사를 소개합니다. 아자 언론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창간한 온라인 매체 아시아엔은 2025년 4월 15일부터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10회에 걸쳐 아자 창립 20주년 특집기사를 보도합니다. – 편집자
아자 동남아시아 권역 기고자: 노릴라 다우드(말레이시아), 소팔 차이(캄보디아), 압둘 마난(인도네시아), 엘리샤 에비노라(인도네시아)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따르면, 캄보디아 경제는 2024년 5.8%, 2025년 6.0%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관광산업의 회복과 제조업의 급부상에 기인한다. 지속적인 경제성장 덕분에 외국 자본도 캄보디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전 아픔 딛고 일궈낸 두 번의 세대교체
2004년 캄보디아왕국은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했다. 부왕 노로돔 시아누크가 퇴위하면서 노로돔 시하모니 왕자가 왕위를 이어받은 것이다. 1941년 왕좌에 오른 고(故) 시아누크 국왕은 1953년 프랑스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이끌어낸 주역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시아누크 전 국왕은 1955년 아버지에게 왕위를 넘기고 국가원수로 왕국을 이끌었으나, 1970년 군사 쿠데타로 실각했다. 이후 캄보디아 내전이 발발, 수백만 명이 살해, 고문, 기아, 질병으로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 1991년 캄보디아는 유엔의 지원 하에 파리평화협정을 체결했고, 1993년 사상 최초의 총선을 치렀다. 그 즈음 노로돔 시아누크 또한 왕위에 복귀해 2004년 퇴위할 때까지 왕좌를 지켰다.

시아누크 퇴임 19년이 지난 2023년 캄보디아는 또다른 세대교체를 맞이했다. 총선을 앞둔 2023년 7월 23일 훈센 총리가 사임하면서 그의 장남 훈 마넷 장군이 캄보디아 제37대 총리로 선출됐다. 훈센 전 총리는 현재 상원의장이자 집권 캄보디아인민당(Cambodian People’s Party, CPP) 당수로 활동하며 그의 뒤를 받치고 있다.
미국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에서 군사학을 공부한 훈 마넷은 1995년 왕립 캄보디아군에 입대하며 군 경력을 쌓았다. 뉴욕대에서 경제학 석사, 영국 브리스톨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아 경제학에도 정통하다.
캄보디아는 내전이라는 아픈 역사가 있다. 2006년 캄보디아는 캄보디아 특별법원(크메르 루주 재판소)을 설립, 1975년부터 1979년 사이 수백만 명을 학살, 굶주림, 질병으로 사망하게 만든 크메르 루주 정권의 고위 지도자들을 기소했다. 캄보디아는 2022년 말 크메르 루주의 국가원수였던 키우 삼판에 대한 유죄 판결을 끝으로 마침내 과거사를 청산했다.
캄보디아가 새 시대를 맞이했지만 코로나19,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강대국의 지정학 경쟁 등 국제정세가 혼란한 시기에 젊은 기수가 느낀 부담감은 막중했을 것이다. 아세안(ASEAN) 10개국 정상 중 가장 어린 총리인 그는 “대형 항공기 10대를 짊어진 듯하다”면서도 조국의 미래를 이끌어 나가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작지만 큰 마음 가진 나라”
전 세계를 강타한 전염병 코로나19는 2020년 초부터 2023년 초까지 지속됐다. 이 기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약 7,010,681명이 사망했으며, 캄보디아에서도 3,05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캄보디아는 팬데믹 공포 속에서도 “작지만 큰 마음을 가진 나라”라는 이미지를 전세계에 각인시켰다.
2020년 2월, 승객 1,455명과 승무원 802명을 태운 미국 선박 웨스테르담 호가 아시아 해상 위를 2주 동안 표류했다. 웨스테르담 호는 2020년 1월 홍콩에 기항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하선한 승객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다음 기항지인 일본, 필리핀, 태국, 홍콩, 대만은 웨스테르담 호의 입항을 거부했다.
온 세상이 닫혀 있었던 그때 캄보디아가 문을 열었다. 2020년 2월 13일 캄보디아 정부는 웨스테르담 호의 시아누크빌 입항을 허용했다. 탑승객 중 일부는 캄보디아 정부의 부담 하에 수도인 프놈펜 시내와 시엠립 주의 앙코르와트를 관광하기도 했다. 당시 훈센 총리는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에 맞춰 외국인 승객들을 환영하며 꽃과 크메르 전통 스카프를 손수 전달했는데, 이 장면은 전 세계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작지만 큰 마음을 가진 나라”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이에 대해 세계보건기구(WHO)도 “캄보디아는 자원이 부족한 국가임에도 세계 보건안보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인도주의적인 접근과 체계적인 대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밝혔다.
2024년 12월 28일, 2,000여명의 승객을 태운 웨스테르담 호가 캄보디아를 다시금 찾았다. 웨스테르담 호가 그날의 감동을 재현하고자 시아누크빌 항구에 입항한 순간 캄보디아 국민들도 뜨거운 환대로 이들을 맞이했다.

캄보디아 사상 최초 ‘동남아시안게임’, 후대까지 이어질 자부심으로
동남아시안게임(SEA Games)은 1959년 태국 수도 방콕에서 첫 대회가 치러진 이래 지역을 대표하는 국제행사로 자리매김해 왔다. 동남아시안게임 개최는 아세안 회원국들의 의무와도 같은 것으로 캄보디아 역시 대회를 개최할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훈센 전 총리는 “국가 재건이 먼저”라며 아세안 국가들의 양해를 구했었다.
국가가 안정을 되찾고 여력이 생길 즈음 캄보디아 내에선 “동남아시안게임을 개최할 때가 됐다”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정부도 의지를 드러냄에 따라 2023년 동남아시안게임 개최가 확정됐다.
대회의 주 경기장인 모로독 테초 국립경기장은 1억 달러(약 1450억원) 이상의 자본을 들여 지은 최신시설로 캄보디아의 자신감을 상징한다.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캄보디아는 국가 역사상 최초의 동남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캄보디아는 ‘평화를 위한 스포츠, 모두를 위한 평화’라는 슬로건 아래 2023년 5월 5일 제32회 동남아시안게임, 6월 3일 제12회 동남아시안 장애인게임을 각각 소화했다. 프놈펜, 시아누크, 껩, 깜폿, 씨엠립 등 캄보디아 전역에서 울린 함성은 대회의 열기를 고조시켰다.
주목할만한 점은 캄보디아 정부가 외국인 선수단의 체재비를 전액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일반관객들에게도 무료 입장권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캄보디아 정부는 국보인 앙코르와트 관광까지 지원하며 이보다 더 할 수 없는 환대를 보여줬다. 당시 훈 센 총리는 “돈은 쓰고 없어지지만 명예는 대물림 된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캄보디아가 대회를 통해 얻은 자부심이 후대까지 이어지길 바랐다.
캄보디아는 대회를 치르면서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 그 이상을 얻었다. 특히 캄보디아 청년들은 선대의 아름다운 문화와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이웃과 연대하는 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캄보디아를 넘어 아세안 전체로 봐도 큰 수확이 있었다. 가입을 앞두고 있는 동티모르까지 총 11개국이 참가한 이번 대회는 아세안 6억 인구의 가능성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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