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아시아기자협회 창립 20주년] 말레이시아 ’60년 장기집권 국민전선 몰락’

아시아기자협회(Asia Journalist Association, 이하 아자)는 2004년 11월 창립된 국제언론인 단체로, “한 줄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피와 땀을 아끼지 않는다”는 모토 아래 공정보도·언론자유 수호·저널리즘 발전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자는 창립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협회 20주년 주요사와 동남아시아 및 중앙아시아 권역 협업 콘텐츠인 회원국 20년 주요사를 소개합니다. 아자 언론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창간한 온라인 매체 아시아엔은 2025년 4월 15일부터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10회에 걸쳐 아자 창립 20주년 특집기사를 보도합니다. – 편집자

아자 동남아시아 권역 기고자: 노릴라 다우드(말레이시아), 소팔 차이(캄보디아), 압둘 마난(인도네시아), 엘리샤 에비노라(인도네시아)

노릴라 다우드 아자 동남아시아 권역 부회장은 아세안기자연맹과 말레이시아 언론인 연합의 회장을 역임한 베테랑 언론인이다. 현재 온라인 말레이시아 월드뉴스와 잡지 NOW의 편집장을 겸하고 있다.
[아시아엔=노릴라 다우드 말레이시아월드뉴스 편집장, 아시아기자협회 동남아시아 권역 부회장] 2004년부터 2024년 사이 지난 20년간 말레이시아는 고도의 민주주의 국가로 변모해가는 과정에서 여러 도전과 변화를 겪어왔다.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권리, 인권 보호를 외치는 국민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져가는 가운데 다민족·다문화·다종교라는 사회적 특수성으로 인해 국가의 균형발전도 고려해야 했다.

반세기 자유 옥죈 국가보안법 폐지

국가보안법(ISA)은 오랜 세월 말레이시아를 옭아맨 대표적인 악법 중 하나였다. 1960년도에 제정된 ISA는 테러용의자나 민족 또는 종교 관련 선동자를 기소나 재판 없이도 무기한 구금할 수 있도록 했다. 마침내 2012년 7월부로 폐지됐다. 그 빈자리는 보다 구체적인 절차를 명시하는 보안범죄(특별조치)법(SOSMA)이 대체했다.

SOSMA는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6대 총리 재임기인 2012년 4월 의회를 통과했고, 6월 18일 왕실 재가를 받아 7월 31일부로 공식 발효됐다. 이 법은 공공질서와 안보를 유지하기 위한 국가 보안체계 전반을 규정한다.

2015년 8월 29일(현지시각)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전개된 4차 버시 운동 <사진=EPA/연합뉴스>

공정선거 요구 버시운동 ‘활화산’

‘버시 운동’이라 불리는 민주집회는 공정하고 청렴한 선거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열망에서 비롯됐다. 말레이시아 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낸 암비가 스리니바산이 주도한 버시 운동은 말레이시아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정한 선거 보장을 주목적으로 삼았다.

그러나 2007년 버시 운동이 주장했던 선거제도 개혁이 무산되면서 이들의 외침이 사그러들 뻔한 적도 있었다. 당시 버시는 1)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자 명부를 정비하고 2)우편으로 진행되던 투표 방식을 변경하며 3)투표 용지에 지워지지 않는 잉크를 도입하고 4)21일 이상의 선거운동 기간을 보장하고 5)모든 정당이 언론과 자유롭게 접촉할 수 있어야 하며 6)이 모든 안을 통해 부정선거를 종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11년 7월 9일 1만명 이상의 대규모 인파가 참여한 2차 버시 운동이 열렸다. 그러나 시위대는 수도 쿠알라룸푸르 전역에 배치된 경찰들에 의해 강제 해산됐고, 주도자인 스리니바산 야권 지도자 등 1,600여명이 체포됐다.

싱가포르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 동남아연구소가 2021년 1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버시는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총 다섯 차례의 대규모 집회를 이끌어 냈다. 이들의 움직임은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진 못했지만 말레이시아 정치권에 반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버시는 민주주의 정치의 근간인 공정한 선거제도를 이룩하기 위해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2018년 5월 10일 말레이시아 총선에서 야권의 승리를 이끌어 낸 마하티르 모하맛 희망연대 대표(가운데)가 환호하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60년 장기집권 국민전선의 몰락과 정국 불안

2018년 5월 9일 말레이시아 정치권이 충격에 휩싸였다. 60여년 동안 권력을 지켜온 중도우파 연합인 국민전선(Barisan Nasional, BN)이 총선에서 참패한 것이다.

당시 총선에서 21~40세 청년층은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들은 특히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 상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는데, 이는 희망연대(Pakatan Harapan, PH)가 정권을 창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희망연대는 인민정의당(PKR), 말레이시아 원주민연합당(PPBM), 국민신뢰당(PN), 민주행동당(DAP) 등 4개 정당으로 출발한 중도좌파 연합이다.

1974년 창설된 국민전선(BN)은 전신인 동맹당의 역사까지 포함하면 약 60년 동안 권좌를 지켜왔다. 국민전선은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를 주축으로 중국계 정당과 인도계 정당 등 9개 정당으로 구성돼 있으며, 1994년에는 사바 민족계 정당까지 가세했다. 이들은 2018년 총선 이전까진 다민족·다문화 사회로 대변되는 말레이시아에서 장기 집권했다.

국민전선(BN)이 붕괴하며 말레이시아는 정국 불안을 겪었다. 이후 5년간 각기 다른 연합에서 3명의 총리가 탄생한 것이다. 1957년 말레이시아 독립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후폭풍도 거셌다. 2018년 5월 12일 나집 라작 당시 총리는 총선 패배를 책임지고자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의 총재직과 국민전선(BN) 대표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그 직후 신 정부는 라작과 부인에 대한 부패 혐의를 수사하며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희망연대(PH)를 이끌었던 마하티르 모하맛은 당시 92세의 고령에도 불구 2018년 5월 10일 말레이시아 7대 총리로 복귀했다. 그는 앞서 1981년부터 2003년까지 22년간 제4대 총리로 재임한 적이 있는 말레이시아 정치권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희망연대(PH) 연정도 불과 2년도 안돼 ‘셰라톤 무브’라 알려진 스캔들을 통해 와해됐다. 2020년 2월 불거진 이 사건으로 마하티르 역시 책임을 지고 총리직을 사퇴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희망연대(PH)의 내분으로 자멸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2018년 총선 이전에 마하티르가 그의 후계자인 안와르 이브라임에게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스캔들 직후인 2020년 2월 29일 말레이시아 국왕은 무히딘 야신을 임시 총리로 지명했다. 같은 해 8월 무히딘 야신이 제8대 총리로 공식임기를 시작하며 국민동맹(PN) 연정이 출범했다.

그로부터 약 2년 동안 말레이시아 정국은 혼돈 그 자체였다. 같은 시기 기승을 부린 코로나19 팬데믹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2021년 6월 전국 봉쇄령이 시행되면서 정부의 어설픈 위기 대응이 도마에 오르자 말레이시아 국왕이 정당 지도자들과 연이은 회동을 가질 정도였다.

의회의 지지를 얻고 있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한 무히딘 야신은 2021년 8월 야권에 “개혁을 실시할 테니 신임투표에서 나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무히딘 야신도 총리가 된 지 1년 반이 채 되지 않아 자리에서 내려오고 말았다.

2021년 8월 21일 말레이통일국민기구(UMNO)의 이스마일 사브리 야콥이 국회에서 과반 이상의 지지를 얻고 또 왕실의 재가를 받아 말레이시아 9대 총리로 임기를 시작했다. 이스마일 사브리 정부는 정국을 안정시키고자 숙적이었던 희망연대(PH)와 양해각서까지 체결했다. 하지만 2022년 11월 19일 제15대 어느 정당도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자력으로 연정을 구성할 수 없는 이른바 ‘헝의회’가 탄생하며 짧은 임기를 마감했다.

이후 희망연대(PH)의 안와르 이브라힘이 사태를 수습하며 연정을 이끌 총리로 임명됐다. 이브라임 총리는 포용적이고 공정하며 민주적인 사회를 구현한다는 명분 아래 새로운 정치, 사회적 비전(MADANI)를 표방하는 통합정부를 출범시켰다.

안와르 이브라힘의 통합정부는 국회 의석수의 3분의2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안와르가 이끄는 희망연대(PH), 한때 말레이시아 정치권을 석권했던 국민전선(BN),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큰 주인 사라왁을 기반으로 한 사라왁연맹(GPS), 사바인민연합(GRS)까지 4개의 주요 세력과 3개의 군소독립정당이 통합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정국이 어느 정도 안정됨에 따라 이브라힘 총리는 디지털-IT 산업에 주력하며 국가경제의 체질개선을 천명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2024년 한 해 동안 마이크로소프트, 엔디비아, 오라클,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들으로부터 2500억 링깃(약 80조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해 16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며 2030년 신산업 마스터플랜(NIMP 2030)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 전했다.

‘말레이시아 방문의 해’ 무색케한 코로나19 팬데믹, 건국 최초 국가봉쇄까지

말레이시아 또한 코로나19 팬데믹을 피해갈 수 없었다. 2020년 3월 건국 이래 최초의 국가봉쇄라는 극단적인 조치까지 경험했다. 바이러스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된 이동제한명령(MCO)은 국민들의 일상을 완전히 뒤바꿨다.

코로나 19가 발병되기 직전인 2020년 1월 말레이시아 정부는 ‘말레이시아 방문의 해’를 슬로건으로 삼아 관광산업을 장려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봉쇄령 속에서 소매업, 항공, 관광 등 관련 사업은 1년 가까이 얼어붙었다. 희망은 곧 침묵으로 바뀌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수많은 사업체가 문을 닫았고 실업자도 2020년 10월 기준 약 75만명까지 도달했다.

말레이시아의 코로나19 최초 확진자는 2020년 2월 5일 확인됐다. 조사 결과 그는 같은 해 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했던 41세 남성이었다. 당시 회의에는 중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대표단이 참석했다고 한다.

코로나19는 2020년 3월 한 모스크에서 열린 종교집회를 기폭점으로 급격하게 확산됐다.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등 주변국 신자들까지 참석한 이 집회에서 총 3,375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는데 이 중 말레이시아인은 2,500여명에 달했다. 이후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했고, 그 기세는 연말까지 이어졌다. 2020년 12월 기준 집단감염 구역은 468개에 달했는데 그 중 한 공장에선 총 6,003명이 감염되는 최악의 사례로 기록됐다.

말레이시아 보건부에 따르면 2024년 12월 8일 기준 코로나19 완치자는 완치자는 528만여명, 누적사망자는 37,351명이며, 그 중 약 8천명 가까운 숫자가 병원 진료도 채 받지 못하고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가 말레이시아에 남긴 상처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계속)

관련기사: 아시아기자협회, 지난 20년(2004~2024) 되돌아본다
[아시아기자협회 창립 20주년] “아시아언론인 평화염원 담아 ‘아자’ 발족”
[아시아기자협회 창립 20주년] “‘아자’의 이름 아래 끈끈한 가족처럼”
[아시아기자협회 창립 20주년] “아시아-세계 잇는 가교, 아자의 여정은 현재진행형”
[아시아기자협회 창립 20주년] 말레이시아 ’60년 장기집권 국민전선 몰락’
[아시아기자협회 창립 20주년] 캄보디아 ’60여년 기다린 동남아시안게임, 길이 남을 자부심으로’

노릴라 다우드(Norila Daud)

전 CAJ(아세안기자연맹) 회장, 말레이시아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