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 칼럼] 피난민 1천만명 시대···집시·백러시아 그리고 한민족
2012년에는 전 세계에서 760만명이 살던 곳을 등졌다. 4.1초마다 1명 발생.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매년 이 대열에 더 합류한다. 10년 전에는 총 피난민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1%였다. 그간 10% 늘어 81%나 되었다.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이라크, 수단, 시리아인이 760만의 55%나 된다.
전쟁 중인 아프간이 제일 많다. 피난민 행렬이 32년간이나 계속되고 있다. 이란이나 파키스탄으로 떠났다. 이어 소말리아, 이라크, 시리아 순이다. 올 들어 발생한 시리아 난민 100은 760만명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 추세라면 시리아 난민은 올 한해에 200만명에 이르리라고 본다. 이외에도 작년부터 또 다시 분쟁이 발생하여 피난민이 생기는 나라가 있다.
말리(Mali)는 이슬람 반군+Tuareg족 대 정부군+프랑스군의 내전으로 피난민이 생기고 있다. 몇 명인지 조차 모른다. 콩고민주공화국(the Democratic Republic of Congo)은 M23 반군 대 정부군이 내전 중이다. 이미 80만명의 피난민이 발생했다. 내전과 외국군대가 들어와서 전쟁 치르는 나라들 국민이 유랑한다. 올 연말이면 1000만명이나 된다.
1918년 러시아에 혁명 발발.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소련이다. 무산계급 노동자와 농민의 세상이 됐다. 그때까지 권력과 부를 쥐었던 계층이 내쳐졌다. 왕족과 귀족과 지주였다. 쫓겨난 그들은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 백러시아인이다. 우리나라에도 광복 후 한동안 그들이 있었다. 하얀 피부의 미남미녀. 고운 손에는 아코디언과 바이올린이 들려있었다. 거리악사였다. 본디 화려한 살롱에 앉아 듣고 박수나 쳤던 신분. 상류사회 교양으로 배운 음악. 나락으로 떨어진 후에는 밥벌이 수단이 되고 말았다. 그 후손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200만명으로 추산되는 이들. 대부분 이스탄불로 모여 들었다. 천막생활. 굶주림과 동거. 병으로 죽어갔다. 다른 곳으로 가지도 못했다. 나라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국민국가체제에서는 누구든 어느 나라에 속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가 발생한다. 보호를 받는다. 신분증명서가 발급된다. 난민은 국적이 없다. 따라서 여권도 없다. 프랑스가 이들을 보살폈다. 생필품과 의약품을 지원했다. 주변 국가와 협의하여 임시통행증제도도 만들었다. 나아가 난민보호 여론을 환기. 국제연맹 난민고등판무관 창설도 주도했다. 그런 프랑스가 집시를 추방하고 있다. 300여 거주지 철거에 2만여명 강제출국. 범죄와 매춘과 아동학대의 온상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는 불황에 따른 정권 불신여론 완화용이다. 집시는 유랑민족이다. 히틀러는 그게 싫어서 60만명이나 살해했다. 세계 각지에서는 부족 간 혈투도 끊이지 않는다. 민족이 다르고 부족이 다른 족(族)은 화해와 상생을 거부한다.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간도로 가야했던 한민족은 60만명이다. 제2차 대전 후 일본에 남은 배달민족도 60만명. 내 나라 없으면 보통 60만명은 희생을 당하고 마는가. 묘한 일치다. 족(族)에 속해야 대접받는 세상은 불공평하다. 득세한 계(系)의 일원이어야 출세한다. 실세라는 회(會)의 회원이어야 성공한다. 파벌에 속하지 않으면 외면 당한다. 줄 없으면 밀린다. 정의롭지 못하다. 불공정한 처사가 60만명을 피해자로 만든다. 어떤 일에 정통한 통(通)이 대접받아야 편한 세상이다. 내 사람 꼭 앉히려는 욕심 줄이기가 열쇠다. 안심세상 만들기가 그래서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