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12만 다문화가정이 위태롭다

18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이주여성 추모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한국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

12만 다문화가정이 위태롭다. 이혼은 늘고 부부갈등은 살인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녀들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불안하다. 사회문제로 번져가고 있는 다문화가정의 불안 원인과 해법을 찾아봤다.

한국男·외국 한 해 10쌍 결혼하고 4쌍 이혼

2012년 5월 현재 결혼이주여성은 12만6415명에 이른다. 중국 5만2068명, 베트남 3만8295명, 일본 1만336명, 필리핀 8728명, 캄보디아 4583명, 태국 2569명, 몽골 2355명 순이다.

12만6000여 다문화가정(이하 외국인 남성 결혼 가정 제외) 가운데 매년 10% 이상의 부부가 이혼을 하고 있으며 그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의?결혼이혼 통계에 따르면 다문화가정 이혼이 2009년 8246건,?2011년 8349건으로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2011년 다문화가정의 결혼건수는 2만2265건 이었다. 수치를 단순화 하면 한 해 10쌍이 결혼하고 4쌍이 이혼하는 셈이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가정폭력 실태조사서(2010년)와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의 이주여성 피해 상담건수(2012년 1분기)는?다문화가정이 얼마나?불안한 상황에 놓여있는지 잘 보여준다.

가정폭력 실태조사서는 77.9%의 결혼이주여성이 폭력(언어폭력 포함)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주여성 피해 상담은 3개월 동안 무려 1만6235건에 이르렀다. 이 중 부부갈등, 가정폭력, 가족갈등 등 가정에서의 불화로 인한 상담이 36%로 집계됐다.

비정상적 결혼?문화적 갈등?경제적 빈곤 등?원인

다문화가정의 이혼증가, 불안문제는 비정상적인 결혼에서 기인했다. 한국 남성들은 국제결혼 브로커를 통해 1500~2000만원의 돈을 주고 신부를 고르는, 매매혼 형식으로 접근했고, 베트남, 중국 등의 여성들은 ‘코리안 드림’을 위한 수단으로 결혼을 선택했다.

일반적 결혼에서 중요한 기준인 나이, 성격, 학력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언어소통도 안 되고 문화도 다르다 보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으로 빈곤한 가정도 많다.

다문화인구동태 통계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 가운데 남편과 나이 차이가 31년 이상 되는 여성이 1.6%, 17~30년 차이가 22.9%, 9~10년 차가 13.1% 등 9살 이상 차가 나는 부부가 35%를 넘는다. 학력은 오히려 외국인 아내가 높다. 외국인 여성의 초등학교 졸업 비율은 6%, 한국인 남성은 12.7%인 반면 고졸 비율은 외국인 여성 33.6%, 한국인 남성은 31.5%로 나타났다.

서울이주여성디딤터 권오희 원장은 “돈을 주고 데려왔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은 동남아 여성들을 하대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교육수준이 높고 인권 의식이 높아진 이주여성들이 늘면서 이혼이 급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결혼 사전교육을 넘어 이주 여성노동자 수를 늘려 자연스러운 결혼을 유도해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사진은 한국전통 예절을 배우고 있는 결혼이주여성들 모습.<사진=경기 적십자>

단체맞선 금지 등 결혼중개업법 일부 개정돼 8월2일 시행

다문화가정의 문제가 심각해짐에 따라 한선교 새누리당 의원, 박선영 선진통일당 전 의원 등 여러 국회의원들이 법 개정에 나섰다. 그 결과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8월 2일 시행돼 인권침해적인 국제결혼에 대한 우려를 일정부분 해소시켜줄 것으로 기대된다.

개정법률안에 따르면 18세 미만 여성 소개와 단체 맞선 및 맞선을 위한 집단기숙이 금지된다. 또 범죄사실증명서 등 결혼관련 서류의 보존이 의무화되며 국제결혼중개업 등록시 자본금 1억원 보유가 의무화된다. 그밖에 국제결혼중개업체 현황이 시군구 홈페이지에 게시돼 합법적인 업체를 구분할 수 있다.

법무부는 2010년 10월부터 국제결혼 또는 외국인 배우자 초청을 앞둔 한국인을 대상으로 국제결혼 안내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의무적으로 이수토록 했다.

권오희 서울이주여성 디딤터 원장 “앞으로 국내 거주 국제결혼 부부는 늘 수 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혼 등의 문제를 미리 내다보고 준비하고 예방해야 한다. 기왕이면 국제결혼을 하는 예비 신랑 신부 양쪽을 모아놓고 다문화가정의 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알려줄 필요가 있다. 시부모까지 온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사전교육을 넘어 이주 여성노동자 수를 늘려 자연스러운 결혼을 유도해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한국염 한국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 대표는 “이주를 위해 결혼하는 사례보다 노동자로 와서 결혼한 여성들의 이혼율은 훨씬 적다”며 “외국인 가사노동자, 간병인 등 이주여성들이 들어올 수 있는 다양한 합법적인 길이 확보된다면, 상황이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여성 안정적 정착위해 조기 국적취득 필수”

이주여성들의 안정적인 정착과 삶의 희망을 위해서는 조기 국적취득이 필수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국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 등 50여 이주여성 관련 단체가 최근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이주여성 추모집회에서 발표한 성명서에는 “한국인 배우자를 통해서만 국적이나 영주권, 체류자격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든 불평등한 제도는 결혼이주여성이 안전하게 한국에 살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다문화가족’의 불안정성을 상징한다”고 밝혔다.

이재홍 나주시 행정과장은 최근 다문화관련 박사학위 논문에서 “코리안 드림을 안고 입국했지만 현실은 부양능력 없는 남편의 폭력과 가난의 연속, 언어소통 부재, 사회적 냉대, 시부모와의 갈등으로 마음속까지 상처로 얼룩진 이주여성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조기 국적취득이 필수”라고 말했다.

이 과장은 이주여성들의 국적취득을 가로막는 첫 번째 장애물로 국내법에서 18세 이상으로 돼있는 결혼연령을 이주여성들에게는 20세로 적용하는 조항을 들었다. 그는 “이른 나이에 한국으로 시집 온 이주여성들을 위해 결혼연령을 18세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가 위장결혼을 막기 위해 입국 후 2년으로 제한하고 있는 ‘혼인에 기한 간이귀화’ 신청자격을 자녀 출산 시 1년으로 단축하는 방안으로 시급히 정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와 함께 국적취득 신청 때 남편과 동행해야 하는 조항과 3000만원 이상 예금통장·부동산 증명이나 취업증명을 요구하는 조항도 큰 장애물로 지적했다.

그는 “상당수 남편은 이혼요구 등을 우려해 이주여성들의 국적취득에 소극적이고, 재산 등 경제문제를 국적취득에 결부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이주여성들이 국적취득에 대한 인식이 아예 없거나, 신청절차를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이재홍 과장은 “이주여성들의 조기 국적취득을 돕기 위해서는 자치단체가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국적취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법무·외교·행안·여성가족·보건복지 등 5개 부처로 나뉘어 있는 관련 업무도 하루빨리 일원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남주 기자 david9303@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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