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위협’ 느끼는 이주여성 “우리를 죽게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다음은 7월18일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이주여성 추모집회’에 참가한 이주여성들이 발표한 <성명서> 전문입니다.
이주여성이 가정폭력으로 계속 죽어도 반응이 없는 한국사회, 우리는 두렵습니다.
저희는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여성들입니다.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자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에서 상상한 삶은 사랑하는 가족과 꾸리는 행복한 삶이었습니다. 이렇게 죽으려고 오지 않았습니다.
올해 들어서만 3번째입니다.
지난 3월 7일에는 베트남 여성이 강원도 정선에서 정신병을 앓는 남편에게 살해당했습니다. 그리고 6월 30일에는 강원도 철원에서 한국계 중국 여성이 남편에게 맞아 4일 동안이나 뇌사 상태로 있다가 7월 4일에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7월 2일에는 또 다른 한국계 중국 여성이 남편이 휘두른 칼에 찔려 죽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자꾸만 발생합니까?
한국에 살고 있는 모든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이런 사건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나에게도, 내 친구에게도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나도, 내 친구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나 두렵습니다. 오로지 남편 하나 믿고 왔는데, 가장 가깝게 나를 지켜줘야 할 남편에게 죽어야 하는 현실 앞에서 분노와 무력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우리 이주여성들의 두려움과 다르게 한국 사회는 너무나 조용합니다.
이주여성이 남편에 의한 폭력으로 죽어갈 때마다 남편의 도움없이 이주여성 스스로 체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고, 국제결혼 하는 남성들의 신원을 확실히 하여 위험할 수 있는 남성의 결혼을 막아야 한다고도 주장했습니다. 가정폭력으로 신고해도, 경찰이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은 분위기를 느낍니다. 전반적으로 한국사회는 가정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낮습니다. 평소에 폭력적인 상황이 발생해도 이를 흔한 ‘부부 싸움’으로 생각하는 것은 매우 큰 잘못입니다. 그런 인식이 퍼져있기 때문에 이런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사건이 계속 생겨납니다.
우리, 이주여성들은 다음과 같이 요청합니다.
이주여성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 주십시오.
일부 한국 남성들이 결혼에 대한 책임의식 없이 결혼할 수 있는 상황은 막아야 합니다. 알코올 중독, 정신병력, 폭력 등 이주여성에게 위협이 되는 남성들의 결혼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결혼이주여성이 폭력 상황에서도 자신의 체류 문제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바꿔주십시오. 이주여성이 아무리 결혼에 대한 의무를 다해도 여성 스스로 체류권을 받을 수 없는 현실은 바뀌어야 합니다. 언제까지 이런 죽음을 묵인할 생각입니까?
가해 남편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원합니다. 가정폭력에 대해서도 부부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로 강력하게 대응해 주십시오. 한국의 법적, 제도적 절차를 잘 알지 못하는 이주여성들입니다. 한 번 신고하더라도 강력하게 조치하여 주고, 이주여성이 안전하게 상담 받을 수 있는 기관을 적극적으로 안내해 주십시오.
이주여성을 이웃으로 둔 한국 시민들께도 호소합니다. 주변에 이주여성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이웃에서 폭력 상황을 알고 있다면 적극적으로 신고해 주시고,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십시오.
더 이상 결혼으로 와서 남편에게 죽는 여성이 없어야 합니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이주여성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이주여성 관련 정부 부처는 물론, 한국사회와 시민여러분 모두에게도 있습니다.
우리를 죽게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2012. 7. 18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이주여성 추모집회 참가 이주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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