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이주여성 단체 성명 “국적 ·체류제도 개선돼야”
*다음은 7월18일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이주여성 추모집회’를 주최한 이주여성 단체의 <성명서> 전문입니다.
또 다시 연이어 발생한 남편에 의한 결혼이주여성 살해 사건,
한국사회는 도대체 무얼 하고 있습니까?
결혼이주여성이 남편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한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였습니다.
지난 6월 30일, 강원도 철원의 한국계 중국여성(김영분 31세)이 남편의 폭력으로 4일동안 뇌사상태에 있다가 7월 4일 사망하였고, 지난 7월 2일에는 한국계 중국여성(리선옥 59세)이 서울 강동구에서 남편의 칼에 찔려 살해당했습니다. 이 두 사건을 보면 결혼이주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인권침해의 실상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첫째, 일부 결혼에 대한 책임감이 없는 남성이 국제결혼을 하여 결혼이주여성을 괴롭히는 경우입니다. 피해 여성 故리선옥씨는 2005년 9월 가해 남편과 재혼으로 한국에 입국하였습니다. 7년의 결혼 생활 동안 남편은 술을 먹고 지속적으로 아내에게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또 다른 피해 여성 故김영분씨는 자녀 4명과 시부모와 생활하면서 무직인 남편을 대신하여 식당, 가게 등에서 일하여 가족을 부양해 왔습니다. 이 두 여성은 실질적으로 가족을 부양하며 헌신적으로 살아왔습니다. 반면 이들의 남편들은 모두 무직으로 알코올에 의존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면서 아내에 대한 폭력을 지속적으로 일삼아 왔습니다. 이는 결혼이주여성이 직면하고 있는, 경제적 착취와 폭력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둘째,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조선족 여성에 대한 일그러진 상입니다. 살해당한 두 여성은 모두 한국계 중국인으로, 한국어가 가능했기 때문에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 지원기관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 고립된 생활을 하였습니다. 故리선옥씨의 가해 남편은 여성이 외부 접촉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심지어 한국에 살고 있는 아내의 동생과 연락하는 것조차 꺼려했습니다. 아내의 휴대폰 사용까지 통제하여 아내가 사용한 통화 내역을 감시하는 등, 아내의 생활 일반을 통제하며 폭력을 행하였지만, 이 여성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소위 ‘조선족 여성에 대한 혼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분위기에 밀려 자신의 성실한 혼인 생활을 증명하기 위해 경제적 착취와 남편의 폭력을 견디며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故김영분씨 역시 친언니와 남동생이 한국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생활에 충실하고자 자신의 어려움과 학대 사실을 주위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무참한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셋째, 남편에 의해 자격을 보장받는 체류와 국적 시스템 문제입니다.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살기위해서는 국적이나 영주권을 취득해야 하는데, ‘국적’이라는 말만 꺼내도 이를 빌미로 여성을 통제하고 학대하는 남편으로 인해 故리선옥씨는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기간이 충분이 지났음에도 국적을 취득하지 못했습니다. 결혼이주여성 스스로 안정적인 체류와 국적 취득을 할 수 없게 만든 한국의 국적 ·체류제도가 오늘 故리선옥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또 다른 가해자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넷째, 가정폭력 피해에 대처하는 경찰들의 잘못된 대처행위를 고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故리선옥씨가 지속적으로 폭력을 당하는 것을 알게 된 동생은 언니가 폭력을 당했을 때 두 번이나 경찰서에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경찰은 동생에게 “가해자 구속을 원하느냐, 부부 관계에서 동생은 제3자이니 빠지라.”는 말을 했을 뿐, 가정폭력 피해여성이 지원받을 수 있는 관련 기관이나 이주여성 폭력 피해 쉼터 안내 등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다섯째, 가정폭력에 대한 주변 이웃을 비롯한 한국 시민들의 무관심입니다. 故김영분씨의 가해 남편이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마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웃 주민들은 물론, 같이 살고 있는 시부모는 故김영분씨의 상황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가정폭력을 ‘부부싸움’으로 사소하게 인식하는 한,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없습니다.
피해 여성들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직면한 셈이었습니다. 평소 결혼이주여성이 학대 사실을 말하지 못하거나, 설령 드러내더라도 관련 기관, 이웃에서 적절한 대응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 결과적으로 오늘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지난 3월 정선에서 한국인 남편에 의해 베트남 여성이 살해당한지 불과 세 달 후에 또 다시 2명의 결혼이주여성이 남편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한국 정부의 다문화가족 지원 정책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결혼이주여성이 남편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까?
이번의 사건은 한국사회 국제결혼에 내포되어 있는 모든 모순을 망라하여 보여줍니다. 초혼의 젊은 이주여성이 한국 남성과 결혼하여 한국인 2세를 낳고, ‘다문화 가족’을 형성할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에 두고 있는 한국의 다문화정책에서 고연령의 재혼 이주여성은 또 다른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음을 故리선옥씨 사건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미 한국계 중국인의 재혼 비율이 40%대를 육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여성들에 대한 막연한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를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는 한국계 중국인 결혼이주여성이 한국사회에 정착해서 잘 살 수 있도록 하기보다는 이번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끌 여지가 많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보듯이 실질적으로 한국인 배우자를 통해서만 국적이나 영주권, 체류자격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든 불평등한 제도는 결혼이주여성이 안전하게 한국에 살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다문화가족’의 불안정성을 상징합니다. 이렇게 단속하고 경계하겠다는 기조로 만든 제도 하에서 결혼이주여성들은 ‘가족’에 함몰되어 경제적 착취와 물리적 폭력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위장결혼’의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로, 한국인 배우자가 우선이라는 입장에 서서 결혼이주여성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방관하고 있는 우리 모두는,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가정폭력으로 사망하는 이주여성의 가해자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 모순을 내버려둘 것입니까? 더 이상 남편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이주여성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2년 7월 18일
다문화가족상담센터, 대구경북이주노동자인권노동권연대회의, 미리암이주여성센터,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부천이주노동자복지센터, 생각나무BB센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다문화영상아카데미, 서울이주여성디딤터, 서울중국인교회, 수원이주민센터, 아시아의 친구들, 아시아의창,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오산이주노동자센터, 오산이주여성쉼터, 외국인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유엔인권정책센터, 이주민인권을위한부산경남공동대책위원회 (가톨릭노동상담소, 김해이주민인권센터, 노동인권연대, 민주노총 부산본부, 부산외국인근로자선교회, 양산외국인노동자의집, 울산이주민센터, 외국인선교회부산지부, (사)이주민과함께(부설기관 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이주여성·다문화가족센터 어울림, 이주와인권연구소, 다문화인권교육센터, 아시아평화인권연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희망웅상), 부산 여성문화극단, 부산인권포럼 준비위원회, 부산아줌마 극단 여우비, (사)단미스위트홈폭력피해이주여성쉼터. 부산인권상담네트워크, 상사프린지 부설 다문화공동체, 평등을 위한 이주민 연대 (Solidarity for Equality of Migrants in Korea), SAPINAKO 부산-경남 필리핀공동체), 이주사회연구소,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 1577-1366 (중앙센터, 수원, 대전, 광주, 부산, 경북 구미, 전북 전주센터), 이주여성인권포럼, 이주인권연대, 인천여성의전화 아이다마을,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전국이주여성쉼터협의회, 조선족교회, 중국길림신문사, 천안모이세,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이주민건강협회, 한국이주여성연합회,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본부 및 지부 (경남이주여성인권센터,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부산이주여성인권센터, 전남이주여성인권센터, 전북이주여성인권센터, 충북이주여성인권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