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내 뜻과 하나님 뜻을 혼동하다”
예레미야 43장
호사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고집이 센 모든 사람이, 예레미야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소. 주 우리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우리가 이집트로 가서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전하게 하셨을 리가 없소”(렘 43:2, 새번역)
국가적 위기 앞에서 사람들은 예레미야에게 기도 부탁을 하며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가야 할 길과 해야 할 일을 알려달라고 요청합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의 응답이 좋든지 나쁘든지 그 말씀에 순종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합니다.(렘 42:6)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이 왔을 때, 그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응답을 주셨을 리가 없다며 예레미야를 몰아붙입니다. 본인들이 기대했던 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답은 정해져 있었고 하나님은 대답만 하시기를 바랐습니다. 그럴 거면 굳이 왜 하나님의 뜻을 여쭈어 봤을까요?
이처럼 기도는 상당히 위험한 행위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됨과 동시에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 중에는 내 뜻을 꺾어야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반드시 수반됩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으십니까?
우리는 내 뜻을 꺾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기도하는 행위에서 오는 신비한 종교적 느낌 때문에 내 느낌과 생각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할 때도 있습니다. 기도 중에 내 욕심과 야망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심리적 작업이 나도 모르게 진행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잘못 기도하면 사람이 더욱 고집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항상 충돌했던 사람들은 당시에 가장 많이 기도하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탄은 기도 자체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사탄이 우리의 기도를 돕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계속 기도하도록 돕는 존재가 사탄입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을 우리에게 불어넣습니다. 기도하다가 받은 하나님의 마음이라며 함부로 하나님의 뜻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일에도 거리낌이 없어집니다.
우리는 왜 날마다 성경을 읽어야 할까요? 말씀으로 나의 기도를 점검하지 않고 계속 기도하는 것은 고장난 차량을 타고 도로에 나가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인지기능이 고장난 우리는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을 자주 혼동하곤 합니다. 예수님조차도 나의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셨다면 우리 중에 누가 감히 하나님의 뜻도 내 뜻과 같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