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현상’이 아니라 ‘섭리’ 속에서 해석하고 이해하다
예레미야 49장…”고통 중에는 견딜 만한 힘으로, 절망 중에는 소망으로, 일이 잘 풀릴 때는 겸손함으로”
“암몬 자손에 대한 말씀이라”(렘 49:1)
예레미야 46장부터 51장까지는 이스라엘 주변국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집트, 블레셋, 모압, 암몬, 에돔, 다메섹, 게달과 하솔, 엘람, 바벨론 이렇게 총 9개 나라가 각각 어떤 일을 겪을지 예레미야의 입술을 통해 선포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방나라들을 향한 심판의 계획을 남유다 사람들에게 알려주셨을까요? 암몬이나 모압, 바벨론과 같은 나라들에 일어날 일을 유다 사람들이 왜 알아야 했을까요? 주변 나라들의 흥망성쇠와 당시의 국제 정세가 그저 나라간의 이권 다툼에 의한 것이기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친히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강대국들이 쥐락펴락하는 것 같아 보이는 세상의 주도권이 강대국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내 삶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일을 그저 현상 속에서가 아니라 섭리 속에서 해석하고 이해할 줄 압니다. 섭리의 특수성이 어떻게 역사의 보편성을 그려내는지를 통찰하는 능력이 신앙 안에 있습니다.
바벨론이 남유다를 침공할 때, 바벨론은 순전히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군사적인 판단 하에 남유다 침공을 결정한 것이지 하나님의 뜻이나 섭리는 그들에게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을 사용하셔서 남유다를 심판하려고 하신다는 얘기를 바벨론 왕이 들었다면 코웃음을 쳤을 것입니다. 100% 느부갓네살 자신의 계획이었고 자신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느부갓네살은 바벨론의 신에게 응답을 받아서 유다 침공을 결정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조차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온 우주와 개인의 삶 곳곳에 뻗어있는 하나님의 손길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신앙고백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이해 가능한 영역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도 섣불리 판단하거나 성급하게 선악을 단정짓지 않습니다. 얼마나 큰 여유입니까? 이 여유로움이 고통 중에는 견딜 만한 힘으로, 절망 중에는 소망으로, 일이 잘 풀릴 때는 겸손함으로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