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익숙함과 친숙함 사이
예레미야 2장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잘 지어진 성전도 있었고 잘 정리된 사역시스템도 갖춰져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매일같이 드려지는 제사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늘 해오던대로 물 흐르듯 진행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의 집례는 노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드리는 예배를 받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광야를 그리워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것이 서툴기 짝이 없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일도, 안식일과 유월절을 지키는 일도 서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광야에는 번듯한 성전도 없었습니다. 낮에는 작렬하는 태양과 더위가, 밤에는 혹독한 추위가 백성들을 위협하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광야는 그들이 그 어느때보다 하나님과 가까웠던 곳이었습니다. 신혼이었습니다. 시내산에서의 언약은 결혼 서약이었습니다. 비록 작은 천막이지만 신혼집도 단장했습니다. 구름기둥을 따라 불기둥을 따라 서로의 호흡을 맞추었습니다.
광야는 하나님과 당신의 백성 사이에 가장 많은 추억이 쌓인 곳입니다. 다투기도 많이 다투었지만 깊은 친밀함을 쌓아갔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솔직했습니다. 그 때는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척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온갖 모양새는 다 갖추었지만 정작 마음은 떠나버린 지금과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그때를 그리워하십니다.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렘 2:2)
익숙함과 친숙함은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하나님과의 친숙함을 상실했습니다. 굳이 마음을 쓰지 않아도 조상 대대로 지켜온 전통과 관례를 지키는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저 해왔던 대로 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교회 문화에 익숙해지는 것이 곧 신앙의 성숙일까요? 교회 용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기도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신앙의 발전일까요? 교회의 이너 서클 멤버가 되면 예수님과 더 가까워질까요?
첫 마음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 성숙입니다. 첫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 발전입니다.
친숙함은 온데간데 없고 익숙함만 남아버린 관계 속에서는 서로가 병들어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난이라는 방식으로 우리의 익숙함을 벗겨내실 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