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용한 무당의 실체

민수기 22장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민 22:19)
무당이 하나님과 접신할 수 있을까요? 발람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은 발람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이 장면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발람은 당시에 용하기로 소문난 무당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800km나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무당에게 국가적 문제를 의뢰합니다. 아마도 당시 중근동 지역을 통틀어 발람을 따라올 무당이 없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발람은 자기가 마치 과거에도 하나님과 소통해 본 적이 있었던 것처럼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무당들의 전형적인 화술입니다. 발람이 평소에 하나님과 접신한 경험이 있어서 그렇게 얘기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대한 분명한 답은 모세오경 전체가 제시하고 있습니다. 출애굽 당시부터 하나님은 모세 이외의 그 어떤 사람과도 긴밀하게 소통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물을 수 있었던 사람은 모세가 유일했습니다.
그럼 왜 발람은 자기가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것처럼 얘기했을까요? 그건 바로 당시 고대 근동 지역에 퍼졌던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신에 대한 소문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그 지역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여호수아 2장, 라합의 증언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신 중에 가장 강력한 신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사람들 사이에 이미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수 2:9-10). 그러니까 발람은 자신 정도 되는 무당이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신을 불러낼 수 있다고 모압 장로들 앞에서 으스대며 허세를 부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밤에 발람에게 진짜 나타나 버리셨습니다.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민 22:20)
발람이 불러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의도를 가지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아마도 발람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발람은 하나님 앞에서 변변찮은 말 한마디 꺼내 보지 못합니다.
이후 발람의 행동은 그가 전형적인 무당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줍니다. 그는 모압 왕이 제시하는 복채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복채를 받으려면 저주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몇 차례에 걸쳐 화려한 저주의 퍼포먼스를 펼칩니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들어간 굿값이 상당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무당의 실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