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임박한 진노를 모면하기 위한 회개

예레미야 4장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렘 4:4)

이스라엘 백성 중에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정한 할례를 원하셨습니다. “스스로 마음의 가죽을 베라” 마음에도 없는 회개는 백날 해봐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회개란 자발적 뉘우침입니다. 자각과 자백이 없이는 회개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입으로만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어떻습니까? 뭐가 잘못인지도 모르고 잘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임기응변이 회개의 형식을 빌리면 상대를 더 화나게 만들 뿐입니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마 3:7-8)

면피성 회개가 회개일까요? 임박한 진노를 모면하기 위해 회개부터 하고 보는 것 또한 회개해야 할 위선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상대방에게 용서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처벌을 각오합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눅 15:18-19)

탕자는 아들로서의 신분 회복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품꾼 취급만 받아도 좋겠다는 마음을 갖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회개가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우리는 자기 잘못을 부인하고 싶어할 뿐, 자기를 부인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회개조차도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할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잘 아시기에 우리의 회개를 도우십니다. 자기 합리화에 능한 우리로 하여금 진정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줄 아는 존재가 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보내주신 분이 성령님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7-8)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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