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하나님 아버지’
이사야 63장
대부분 인간관계에는 모종의 계약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엄격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더라도 서로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선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 선은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에 끊임 없이 조정이 되며, 더 이상 조정이 어려운 경우 관계가 깨어지곤 합니다. 소위 말하는 ‘선을 넘은 상황’이 된 것입니다.
친구관계도, 부부관계도, 형제관계도 예외는 없습니다. 멀어지다 가까워지는 경우도 있지만, 돌이킬 수 없는 한계를 넘어버린 경우에는 단절되고 맙니다.
엄밀히 생각한다면 모든 인간관계는 이해관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금전적 이해관계만이 이해관계가 아닙니다. 친밀감, 안정감, 소속감, 유대감, 동질감 등도 일종의 이익입니다. 이러한 유익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관계는 유지됩니다.
그러나 이해관계 범주에 포함시키기 어려운 관계가 있습니다. 부모-자녀의 관계입니다. 순수하게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마음’은 부모만이 누리는 특권이기도 합니다. 물론 모든 부모가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부모-자녀 관계에는 다른 관계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특별함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성경은 그 마음의 근원을 하나님 아버지라고 소개합니다.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사 63:16)
하나님이 인간을 자녀 삼아서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하나님은 인간이 없어도 홀로 영원하고 거룩하며 영광스러운 존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경외하며 사랑하지 않아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 영향을 받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인간 때문에 굳이 왜 하나님이 슬퍼하거나 기뻐해야 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때문에 질고를 지고, 우리 때문에 상처를 입고, 우리 때문에 기쁨을 이기지 못하는 인격을 입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때문에 애를 태우는 아버지가 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조건이 있어야 한다면 그 조건은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자격이 있어야 한다면, 자격 따위를 생각하지 않는 떳떳함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알려주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이 아니어도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