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악인과 의인이 함께 벌 받는 까닭
에스겔 21장
“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 터이므로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모든 육체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겔 21:4)
학창시절, 단체기합을 받을 때면 내가 왜 쟤 때문에 벌을 받아야 할까 억울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 때문에 모두가 고생하게 될 때면 민망하고 미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만약 요즘에 아이가 학교에서 단체기합을 받고 집에 돌아온다면 가만히 있을 학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잘못이 없는 아이와 잘못한 아이를 구분하는 게 상식이고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학교가 아니라 가정에서 형제 사이에 일이 생겼다면 어떨까요? 부모가 학생들 줄 세우듯 자녀들을 세워놓고 형과 동생의 잘잘못을 하나하나 가리고 동생의 과자를 빼앗아 형에게 줄 수 있을까요?
사실 부모는 딱 보면 압니다. 누가 원인 제공을 했고, 누가 머리를 굴리고 있는지 눈에 보이는 게 부모입니다. 그렇지만 때로는 형과 동생을 함께 혼내곤 합니다. 부모에게는 누가 잘하고 잘못했는지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함께 상생하는 것입니다.
의인과 악인을 똑같이 대하시겠다는 말씀이 선뜻 이해가 잘 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아버지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구절(겔 18:23)도 속 썩이는 악인조차 아버지에게는 아픈 손가락이라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오늘날 이 사회가 단체로 벌을 서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팬데믹 기간동안 바이러스가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고생했습니다. 기후 위기와 환경 오염 문제가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죽게 생겼습니다.
물론 작정하면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누가 옳은지 틀렸는지를 놓고 논쟁을 벌이다가는 상처와 불신만이 남게 되지 않을까요?
특정 사람들의 부주의로 모두가 피해를 보는 일은 화가 나는 일이긴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를 잘 다독여가며 어려움을 함께 견디고 이겨내는 것이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지라”(겔 21:3)
의인과 악인 모두에게 심판의 칼을 똑같이 빼드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적어도 니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하며 싸우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는 아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