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선한 목사, 삯꾼 목자
에스겔 34장
고대 근동에서는 양 떼의 주인과 목자가 다른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양의 소유주가 따로 있고, 소유주로부터 양 떼를 위탁받아 관리하는 목자가 따로 있는 것입니다. 주인이 직접 양을 치기도 했지만 양 떼의 규모가 있을 때는 목자들을 고용해서 양을 맡겼습니다.
자기 소유의 농토를 가진 자보다 소작농 비율이 훨씬 많은 것처럼, 목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부분의 목자들은 주인의 양을 대신 관리해주는 소작’목’이었습니다. 친숙한 표현으로는 ‘삯꾼 목자’입니다. 야곱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외삼촌의 양을 대신 관리하는 삯꾼이었습니다.
삯꾼 목자라는 말이 처음부터 나쁜 의미로 사용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말 그대로 양 주인으로부터 삯을 받고 양을 대신 관리해주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삯꾼 목자들 중에는 자기 임무에 책임감을 가지고 성실하게 일하는 목자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사원이 아무리 열심이어도 사장의 열심을 따라가기 힘든 법입니다. 종업원이 주인만큼의 애착과 책임감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삯꾼 목자가 가진 한계입니다. 주인은 손해를 봐서라도 종업원의 월급을 챙기지만, 종업원이 빚을 내서 주인을 돕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런 종업원이 있다면 그는 이미 사장급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양 떼를 목자들에게 맡겼지만, 목자들은 양을 방치하고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사였습니다. 보다 못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34:15)
그래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선한 목자는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는 모두가 다 삯꾼입니다. 노련하고 책임감이 강한 삯꾼과 무책임고 게으른 삯꾼이 있을 뿐, 다 똑같은 삯꾼에 불과합니다.
삯꾼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지 않습니다. 도리어 양을 잡아 먹습니다. 그렇기에 삯꾼을 따라다니면 늘 어딘가 모르는 부족감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양 좀 쳐본 다윗이 괜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했을까요? 주인의 애정을 받을 때에만 양들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는다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