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권 칼럼] 닮고 싶은 이름들, 요셉·다윗·다니엘·바울···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가 안 되면 사람의 말이나 세상의 노래로는 위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위로는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약점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고 새롭게 시작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위로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새로운 시작이 펼쳐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믿고 아멘, 하면 되는데 왜 안 믿어지는 것일까요.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 이 세상 신, 마귀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예수님의 권능을 거부하는 인본주의로 길들여놓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15절의 메시아, 사탄의 머리를 밟아버린 그리스도의 권능과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이 인본주의입니다. 우리 심령을 빼앗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더러운 귀신을 그리스도의 권능을 사용하여 뽑아내는 것이 전도입니다. 전도는 먼저 우리 자신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여 인본주의로 길들여진 옛 사람의 신분을 새로운 신분으로 바꾸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눈을 뜬 요셉은 자신을 노예로 팔아버린 이복형들, 무고하게 감옥에 보낸 보디발의 아내를 원망하지 아니하였고, 심지어 감옥에서도 인간관계에 성공하였습니다.
다윗은 영적인 눈을 열어 칼과 단창이 아닌 만군의 여호와 이름으로 골리앗을 향하여 도전하였으며 압살롬의 반역이나 주변의 이간질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보혜사 성령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보혜사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보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 하나님과 일체감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이 달라집니다.
갈등이 와도 상관없습니다. 성도의 거룩한 근심은 도리어 기쁨이 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 던져졌지만 하나님의 사자들이 함께 하여 사르지 못하였듯이 보혜사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면 불 가운데 지난다 하여도 우리를 사르지 못하고 물 가운데 지난다 하여도 우리를 침몰치 못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길입니다.
우리의 의지·감정·지식까지도 보혜사 성령 하나님이 통제하시고 진리의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는 자유를 누립니다.
올바른 시작이 있으면 끝은 자연스럽게 보장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올바른 시작은 창세기 3장 15절의 여인의 후손, 메시아가 마태복음 16장 16절의 그리스도로 마태복음 1장 21절, 처녀의 몸을 빌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우리 몸에 각인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의 모든 지식을 배설물로 여기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만이 가장 고상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