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구한말 군산 청년 ‘한승리’와 21세기 정치원로 ‘유인태’의 경우
나는 이따금 세상 돌아가는 걸 알기 위해 유튜브 속에서 혹시 ‘시대의 예언자’ 같은 존재가 없나 찾아본다. 어느 한쪽에 매몰되어 싸움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균형적인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사람의 말을 듣고 싶어서이다.
날카로운 비난보다 남의 선한 면을 발견해 주는 사람이 더 좋다. 늙은 모습에 깡마른 유인태씨의 말이 약간 더듬고 어눌해 보여도 깊고 신뢰가 간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그를 체포 하려는 지명수배 전단이 곳곳에 붙어있던 기억이 난다. 젊은이로서 그냥 바른 소리를 했다가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분이기도 하다. 그런 고난의 과정이 있었는데도 온화하고 유연이다.
더러 유튜브를 통해 보는 김문수씨도 존경스럽다. 한번은 화면을 통해 국정감사장에 있는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가 감사장에 나온 특정 의원을 종북좌파라고 공격한 적이 있다. 그게 부메랑이 되어 그에게 돌아왔다. 의원들은 그런 사실에 대해 따져 물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입장이 곤란할 것 같아 보였다. 침묵하던 김문수씨가 대답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정감사장에 소란이 일었다. 집단적인 비난이 쏟아지는 속에서 그가 퇴장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용기와 기개를 보면서 감탄했다. 세상의 흐름에 부응하지 않고 소신을 말하는 사람들은 성경 속의 예언자같은 소명을 수행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역사자료를 찾아보다가 구한말 초야에 묻혀 살던 한 인물의 연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구한말 전북 군산의 금호학교에 한승리(韓丞履)라는 젊은 선생이 있었다. 그는 새로 생긴 정치단체인 대한협회에 가입해 시간이 나면 각지를 돌아다니며 강연을 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전라도의 포구인 줄포에 와서 이런 연설을 하고 있었다.
“우리 호남의 자랑이고 지도자인 박영효 선생이 개혁을 주장하다가 민씨 정권의 박해로 일본으로 망명을 하셨습니다. 민씨 정권은 박영효 선생을 죽이려고 자객을 보내기도 하고 일본 현지에서 납치해 참살하려다가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박영효 선생을 중심으로 하던 개화파의 주장이 무엇입니까? 제국주의 속에서 우리가 미리 위험을 깨닫지 못하면 당한다는 것 아닙니까? 일본이 미국의 대포에 의해 강제로 문을 연 후 개화파가 생기고 보수정권과 대립했습니다. 메이지유신은 개화파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그때 일본의 양반이던 무사들이 변했습니다. 신분적인 권위이던 칼을 버리고 다양하게 변신했습니다. 후쿠자와 유기치는 일본의 미래를 인도하는 나침반같은 교육자가 됐습니다. 미쯔비시 같은 큰 상인도 생겼습니다. 박영효 선생이 우리도 개혁을 해서 나라를 지키고 발전시키자고 한 게 무슨 잘못입니까? 나라는 백성의 것입니다. 임금은 그 백성들로부터 잘살게 해달라는 권한을 위임받은 것에 불과합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지 못하는 군주는 자격이 없습니다. 서양을 보세요. 4년마다 백성들이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다시 결정합니다.”
강연을 듣는 조선청년들의 피가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임금도 양반들도 그냥 인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지금 조선에서 임금이나 양반들의 상민이나 노비에 대한 인식이 어떻습니까? 그들을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짐승같이 천한 다른 부류라고 인식할까요? 지방 고을의 향리인 중인들 역시 차별을 받아왔습니다. 이방 같은 중인들은 실제로 관아의 살림과 고을의 정치를 다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군수벼슬이 좋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문도 잘하고 글 잘쓰는 똑똑한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향리들에게는 과거를 볼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이 어떨 것 같습니까? 이렇게 사람을 차별하는 나라는 절대로 뭉칠 수 없습니다. 지금의 민심을 보십시오. 일본의 헌병과 경찰이 가죽장화를 신고 긴 칼을 차고 다니니까 벌써 상민들 중에는 자기 아이가 일본 순사가 되게 하고 싶어하는 집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지 않습니까? 일본 경찰한테 조선의 양반들이 꼼짝을 못하는 걸 보고 자기네들도 언젠가는 양반 위에 군림하고 싶다는 겁니다. 우리는 만민평등의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신분이 아니라 실력에 의해 평가되는 세상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의 많은 연설 중에서 내 기억에 남아있는 감동적인 몇 부분을 나의 언어로 재구성했다. 그 연설의 행간 속에서 나는 사람들이 나라를 잃는 것은 개탄하지만 조선의 멸망은 찬성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일었다. 이 시대 성경 속 다니엘 같은 지도자는 누구일까.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지혜와 강한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