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교회는 어떤 곳이어야 할까?

사무엘상 22장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알리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삼상 22:8)

주변에 사람은 많은데 믿을 사람이 없으면 외롭습니다. 사울이 그랬습니다. 왕 곁에는 늘 사람들이 붐볐지만 사울은 그들 중에 어느 한 사람 믿지를 못했습니다. 심지어 아들마저도 못믿었습니다. 신뢰받지 못하고, 신뢰하지 못하는 사울입니다. 얼마나 외롭고 비참했을까요? 그리고 다윗이 얼마나 밉고 싫었을까요?

사람들이 사울 곁에 있는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사울이 왕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사울이라서가 아니라 그가 왕이라서 입니다.

사무엘상 22장에 보면 사울에게 충성스러운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도엑입니다. 그는 사울이 원하는 정보를 들고 등장했습니다. 근데 왜 하필 지금 등장했을까요? 도엑은 그 정보를 한참 전에 알았습니다. 그러나 도엑은 그것을 알게 된 즉시 사울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가진 정보를 언제 오픈하는 것이 가장 유리할까?’ 철저한 계산 속에 ‘바로 이 때다’ 싶어서 사울에게 오픈한 것입니다. 그는 사울에게 충성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출세에 사울이 필요할 뿐이었습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왜 내 곁에 있을까? 그리고 나는 무슨 이유 때문에 그 사람 곁에 있으려고 할까? 질문해 봅니다.

사무엘상 22장에는 사울 곁에 모인 사람들과 다윗 곁에 모인 사람들의 대비가 잘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왕궁에 모였던 것은 서로 이용가치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둘람 동굴은 아무런 이용가치가 없는 사람들끼리 모인 곳입니다.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어 내 코가 석자인 400명이 아둘람 동굴에 다윗 주변에 모였습니다.

교회는 어떤 곳이어야 할까요? 처음에는 아둘람으로 시작했다가 왕궁이 되어가는 교회도 있고, 왕궁인 줄 착각하며 시작했다가도 원래 아둘람이었다는 것을 자각하는 과정의 교회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서로 인격의 바닥을 보는 곳입니다. 나나 저 사람이나 별반 다를 것 없는 죄인이라는걸 인정하게 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이 받아주셨다는 사실에 놀라고, 저런 못된 저 인간도 하나님이 나와 같이 받아주셨다는 것에 또 놀라는 곳이 교회입니다.

“사람들이 왕궁에 모였던 것은 서로 이용가치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둘람 동굴은 아무런 이용가치가 없는 사람들끼리 모인 곳입니다.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어 내 코가 석자인 400명이 아둘람 동굴에 다윗 주변에 모였습니다. 교회는 어떤 곳이어야 할까요? 처음에는 아둘람으로 시작했다가 왕궁이 되어가는 교회도 있고, 왕궁인 줄 착각하며 시작했다가도 원래 아둘람이었다는 것을 자각하는 과정의 교회도 있을 것입니다.”(본문 가운데) 사진은 아둘람 위쪽 유적지에 있는 동굴 구조물 <출처 위키피디아 영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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