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갈급해서 드리는 예배, 조급해서 드리는 예배
사무엘상 13장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삼상 13:12)
갈급해서 드리는 예배가 있고 조급해서 드리는 예배가 있습니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왕으로서의 체면이 중요했던 사울은 조급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 예배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만약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면 사울은 예배가 아닌 다른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을까요?
나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져봅니다.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만큼 더 좋은 수단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다 하지는 않는지 생각해 봅니다. 신앙이란 삶의 최우선순위에 하나님을 두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하는데, 맞는 말일까요? 반만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다른 가치들과 동일선상에 놓고 내가 우선순위를 가리는 모양새, 어딘가 이상하지 않나요? 물론 다른 모든 가치들보다 하나님을 우선시 하는 태도가 귀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심사위원석에 앉아서 하나님 1등, 돈 2등, 명예 3등 이런 식으로 결정하는 태도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삶의 최우선순위라고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모든 우선순위를 하나님이 결정하셔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몇몇 가치들과 순위다툼을 하실 분이 아닙니다. 순위 바깥에서 순위를 결정해 주시는 분입니다.
신앙의 여정이 돌아돌아 늘 제자리인 이유는 1위와 2위를 내가 가리고 있어서입니다. 어떨 때는 하나님이 1위였다가 어떨 때는 2위가 됩니다. 이런 식으로 비교우위적 순환 속에 하나님을 두고 있는 이상 우리의 신앙이 제자리 걸음을 벗어나기는 힘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선순위 후보군에 계실 분이 아닙니다. 심사위원 자리에 계셔야 합니다. 심판석에 계셔야 합니다.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시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