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무언은 또 다른 언어…다른 형태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
사무엘상 28장
평소에 말을 곧잘 하던 사람이 어느 날 말이 없어지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무슨 일이 생긴 것입니다. 큰일일수록 침묵이 깊어지고 길어집니다.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삼상 28:6)
당시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채널은 다양했습니다. 꿈을 통해서 말씀하기도 하셨고, 레위기에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우림을 통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에게는 주로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이 여러 방법으로 하나님께 응답을 구했지만 이번에는 하나님이 침묵하십니다. 말씀 자체이신 하나님이 말씀을 하지 않으실 때는 말씀하지 않으시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무언(無言)은 또 다른 언어입니다. 침묵도 소리입니다. 아무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리내어 말하는 것보다 때로는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침묵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는 의중에 대해 진지하고 신중하게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질문이 바뀌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길래 나의 관심에 아무런 반응이 없으실까?” 이렇게 말입니다. 그러나 사울의 질문은 오로지 “블레셋에게 이길까요? 질까요?”였습니다.
이건 마치 아내가 “오붓하게 저녁식사할 수 있는 식당이 어디 없을까?”하고 아침에 말했는데, 남편이 퇴근하고 들어와서는 “치킨 시킬까? 피자 시킬까?” 라고 물어보는 것과 같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왜 침묵하시는지, 왜 아무런 응답이 없으신지 하나님의 의중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반드시 들어야겠다며 찾아가서는 안될 사람을 찾아가게 됩니다.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삼상 28:7)
만약 나의 기도에 하나님이 침묵으로 일관하신다면 혼자 가만히 앉아 기도의 동기와 기도의 태도, 그리고 기도 속에 비치는 내 관심을 찬찬히 들여다 봐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