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골리앗은 오히려 우리를 기도하고 깨어있게 합니다”
사무엘상 17장
다윗과 골리앗은 과연 싸웠다고 할 수 있을까요? 소위 싸움이라고 하면 공방전을 의미합니다. 공격과 방어가 오가며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하고 나도 피해를 입는 양상을 싸움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다윗은 골리앗을 상대로 싸움을 했다기보다 그저 일방적으로 안면을 가격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명백한 적과 싸우는 일은 굉장히 쉬운 편에 속하는 싸움입니다. 적이 화를 내면 나도 화를 내면 되고, 적이 물어 뜯으면 나도 같이 물어 뜯으면 됩니다. 적이 달려들면 주저하지 않고 돌을 던져도 됩니다. 그런데 가족이 나를 반대하면 어떨까요? 내가 모시는 왕이 나를 막아서면 어떨까요?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삼상 17:28)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서보기도 전에 큰형 엘리압이 다윗을 막아섰습니다. 엘리압은 다윗을 무시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사울이 다윗을 막아섭니다. 골리앗을 상대하는 것보다 이들을 설득하는 것에 다윗은 훨씬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했습니다.
엘리압과 사울에게는 돌을 던질 수도 없고, 주먹을 날릴 수도 없고, 욕을 할 수도 없습니다. 상대하기가 훨씬 까다롭고, 훨씬 신중해야 하고, 더 깊은 지혜가 필요한 상대들입니다. 골리앗보다 더 큰 골리앗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이후, 사울이 다윗을 어떻게 괴롭혔습니까? 골리앗은 다윗의 털끝 하나 손대지 못했지만 사울은 다윗의 젊은 시절 전체를 송두리째 집어삼켰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에게 돌 한 번 던질 수 없었습니다. 다윗에게는 골리앗보다 사울이 훨씬 더 컸습니다.
그리고 골리앗을 이긴 다윗도 나중에는 음욕을 못이기고 밧세바를 범합니다.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도 나중에는 자기 교만을 못이기고 인구조사를 합니다. 다윗을 무너뜨린 건 골리앗이 아니었습니다. 골리앗은 다윗이 가장 쉽게 이긴 상대입니다.
골리앗이 우리 인생을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골리앗 때문에 인생이 망가지지 않습니다. 골리앗은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고 깨어있게 합니다. 문제는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울과 엘리압이고, 나도 모르게 나를 지배하는 내 안의 욕심과 교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