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미움에서 풀려나다
사무엘하 1장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명령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삼하 1:17-18)
사울과 요나단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은 조가를 만듭니다. 제목은 활 노래 입니다. 온 백성들에게 가르쳐서 부르게 할 목적이었습니다.
요나단의 죽음은 안타까울 수 있겠지만 사울은 얘기가 다르지 않나요? 후임자는 전임자의 흔적을 지우려고 애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사울 때문에 허비한 자신의 젊은 세월이 도대체 얼만데, 쾌재를 불러도 모자랄 판에 다윗은 조가를 지어 온 백성들이 사울 왕을 대대에 기리도록 한 것입니다.
다윗은 원수같은 사울을 정말 사랑했던 걸까요? 나는 과연 내 목숨을 노리는 사람에게 두 번 씩이나 기회를 주고, 그가 죽었다는 소식에 안타까워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죽기보다 싫고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미워하며 사는 것은 더 힘이 듭니다.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이 땅 위에 지옥불이 있다면 마음 속에서 불타는 미움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하기 힘든 사람을 사랑하려고 몸부림 치는 것보다,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편이 훨씬 지칩니다. 사랑하기를 애쓰다가 실패하는 것이 미움에 성공하는 것보다 유익하지 않을까요?
사울에 대한 다윗의 감정선을 성경이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는 미움과 복수에 가로막혀 주저 앉아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비록 다윗과 사울 사이에 개인적으로 얽힌 감정이 많지만, 다윗에게는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의 아버지였고,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사람으로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었습니다. 사울 때문에 죽을 만큼 힘들었던 적도 많았지만, 사울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을 깊이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신앙이란 내 관점에 함몰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원수가 원수로만 보이지 않는 신비입니다. 다윗이 지은 활 노래에는 인간의 정치적 시야를 넘어선 하나님의 통치적 시야가 반영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