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종교라는 착각
사무엘하 7장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삼하 7:5)
부모에게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엄마 나 나중에 돈 열심히 벌어서 내가 집도 사주고 차도 사줄께” 성인이 된 아이에게 “엄마가 그거 하나 기대하고 지금까지 기다렸다” 이렇게 말하는 부모가 있을까요? 사실 어린 아이가 그런 말을 할 때 이미 부모는 집보다 더 큰 선물을 받았다고 느낍니다. 그리고는 그런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네 집을 사주는게 빠르겠다’
다윗이 하나님께 집을 지어드리겠다고 하자 하나님이 오히려 “내가 너의 집을 짓겠다”고 하십니다. “내가 언제 내가 거할 집을 지어달라고 한 적이 있느냐? 너가 내 집을 짓는 대신에, 내가 너의 집을 지어가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던 다윗에게 하나님이 주신 언약이었습니다.
종교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신전입니다. 종교에서 신전은 곧 신의 존재감입니다. 신전의 크기와 모양새가 신의 위엄과 능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신전을 거부하셨습니다. 화려한 백향목 궁보다 다윗이 임시로 만들어 놓은 텐트가 더 좋다고 하십니다.
아모스서 9장 11절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날이 오면, 내가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일으키고, 그 터진 울타리를 고치면서 그 허물어진 것들을 일으켜 세워서, 그 집을 옛날과 같이 다시 지어 놓겠다” 하나님이 회복하고 싶으신 것은 솔로몬의 성전이 아니라 다윗의 장막이었습니다. 비록 누추하지만 그곳에서 나누었던 인격적 교제와 친밀함을 하나님이 추억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종교란 착각입니다. 인간이 신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착각입니다. 그래서 신을 위해 조그만 일이라도 하고 나서는 생색내기 일수인 것입니다. 신앙은 그 착각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그저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하신 일을 용납하고 받아들이는 것,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 신앙입니다. 인간이 신을 위해 신전을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인생을 그분의 성전으로 지으시는 일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나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지, 믿음으로 살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