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임진왜란 진주성전투와 ‘달빛철도’
진주성전투…영남과 호남이 목숨 걸고 서로를 지켜주다
1592년 5월 23일, 왜군이 부산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낸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것이다. 왜군은 조선을 파죽지세로 몰아붙인다. 급기야 임금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른다. 이에 백성들의 절망이 극에 달한다.
이 시기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수군(水軍)이 전남 여수 본영에서 출발하여 경상도 앞바다에 도착한다. 뭍에서 연이은 비보가 전해지는 상황에서 바다에서의 첫 출정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아마도 여수 앞바다에서 열린 첫 출정식은 눈물바다를 이루었을 것이다. 살아서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수군들을 배웅하는 그들의 부모, 아내, 그리고 자녀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한편, 조선 수군은 연이은 세 차례의 출정에서 무패의 신화를 이루어내며 자신감을 완전히 회복한다. 1592년 10월 5일, 네 번째 출정에서는 부산포에 정박 중이던 왜군 본영을 초토화시킨다. 부산진이 함락된 지 다섯 달이 채 되지 않아 조선 수군은 잃었던 제해권을 완전히 되찾는다.
이날을 기려 ‘부산시민의 날’이 제정됐다.
이듬해 조선을 두고 명나라와 일본은 강화협상에 들어간다.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진주성 공격을 지시한다. 왜군은 조선 수군에 제해권을 완전히 상실한 터라 바닷길을 통한 병참선이 차단된 상태였다. 이에 현지조달 차원에서의 병참기지 확보를 위한 ‘호남평야’ 쟁탈에 사활을 걸어야만 했다.
진주성은 호남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다. 한 해 전 첫 번째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은 진주목사 김시민이 이끈 관군과 의병들에게 뼈저린 참패를 당한다. 이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큰 실망을 안겨준 진주성이었던 터라, 이번 두 번째로 진주성 전투는 왜군에게 일종의 설욕전이었다. 이 전투에서 조선은 경상도 관군을 포함하여 승려와 주민들이 온 힘을 다해 싸운다. 아흐레 동안 이어진 공방전에서 조선군은 끝내 패배하여 6만여 명이 무참히 살해되는 참사를 겪는다. 우리의 역사에 논개가 등장한 역사적 배경이다.
호남은 남해에서 부산까지 이어지는 영남의 앞바다를 지켜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싸웠다. 영남은 호남의 곡창지대에 왜군이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진주성을 중심으로 결사항전을 했다. 영남과 호남이 목숨을 걸고 서로를 지켜준 것이다. 우리 선조들의 활약을 떠올리면 작금의 동서 간 지역갈등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몇 해 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사회갈등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부담하는 비용이 한 해 246조원이라고 추산했다. 한 사람이 해마다 900여만원을 버리는 셈이다.
현대경제연구소에서는 사회갈등지수 상승과 1인당 GDP 하락이 강한 상관관계를 나타낸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사회갈등지수가 OECD 국가들의 평균수준으로만 내려간다면, 우리나라 가계소득이 연간 0.2% 향상된다는 구체적 분석을 포함하고 있다.
최근 ‘달’구벌 대구와 ‘빛’고을 광주를 잇는 달빛철도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사회기반시설을 과연 경제성만으로 사업성을 논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특히, 동서 간 해묵은 갈등이 여전한 상황에서 달빛철도 사업을 비용편익 관점에서만 논하는 것은 근시안적 판단이 아닐 수 없다.
세계 각국에 대한 사회갈등지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사회갈등은 그 심각성이 우려되는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갈등의 골이 해가 거듭될수록 깊어지고 있으며, 또한 뚜렷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 가운데 동서 간 지역갈등은 이제 일상이 된 탓에 더 이상의 화젯거리가 되지 못하는 듯하여 안타까운 바가 더하다.
이러한 차에 국회의원 261명이 공동으로 발의한 ‘달빛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지난달 통과되었다. 특히 법안에는 사업추진의 큰 난제인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할 수 있는 조건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달빛철도가 하나의 토목사업이 아닌 그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국가재정법에 근거하여 대규모 재정사업의 시행에 앞서 합리적인 재정집행에 관한 의사결정을 지원하기 위해 수행된다. 흔히 사업에 대한 경제성 검토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마도 수도권 사업에서는 비용편익 분석이 지배적 항목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실은 사업의 경제성 외에도 정책성, 지역균형발전, 기술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따라서 달빛철도와 같은 비수도권 사업에서는 경제성 항목에 대한 가중치가 타 항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마련이다. 경제성만으로 사업성을 판단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달빛철도는 비용편익 관점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사업은 분명 아닐 것이다. 동서 간 오랜 지역갈등의 종식은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선물 보따리를 한 아름 가져다줄 것이다. 하나를 향한 우리 사회의 염원을 달빛철도에 담고 싶다.
“하늘의 기회는 견고한 요새에 미치지 못하고, 견고한 요새도 사람의 화합에는 미치지 못한다.”(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