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군사시설···국방개혁·민군협력 성공의 지렛대 역할을
개미의 세계는 참 흥미롭다. 여왕개미를 중심으로 일개미와 병정개미가 역할을 나눠 맡는다. 이 둘은 생김새부터 다르다. 일개미는 군체(群體, Colony)를 위해 쉴 새 없이 일한다. 반면 큰 머리와 몸집을 가진 병정개미는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군체를 위협하는 세력에 맞서 싸운다. 인간 세계의 민간인과 군인을 보는 것 같다.
한편, 일부 개미들간에 발생하는 작은 싸움이 커져 개미집 사이의 전쟁으로 치닫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개미들은 개미집을 지켜내기 위해서, 혹은 더 넓은 개미집을 빼앗기 위해 전쟁을 불사한다. 국지전이 모든 병정개미가 출정하는 전면전으로 확대된 것이다.
전면전에서 승패는 여왕개미의 생사에 달렸다. 한편의 체스게임을 보는 것 같다. 일단 전면전이 발생하면 일개미와 병정개미의 구분은 없어진다. 여왕개미가 죽어 전쟁에서 패한 군체는 이긴 군체의 노예로 살아야 한다. 인간사에서 많은 전면전이 총력전으로 번지는 이유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지구상에는 약 1만5천여 종(種)의 개미가 있다고 한다. 이들 가운데 꿀단지개미는 싸우는 척만 한다. 싸우는 척하면서 서로 협상하는 것이다. 군체의 요구가 관철될 수 있다면 불필요한 싸움을 피하는 게 낫기 때문이다. 이는 전쟁의 참사를 알기에 외교로 마무리하기 위한 것이다.
한편, 아마존개미는 자기 군체를 위한 노예를 확보하기 위해 다른 개미집에서 애벌레와 번데기를 납치한다. 때에 따라서는 다른 개미집을 털어 전체를 노예로 삼는다. 패배한 개미들은 승리한 군체의 여왕개미가 뿜어내는 페로몬에 의해 순종적인 노예 개미가 된다. 이때, 개미는 전면전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총력전을 치른다. 한 민족이나 국가 역시 전쟁에서 지면 식민지가 된다. 지배자의 세뇌식 교육과 가혹한 노예의 삶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
여왕개미의 생사처럼 국가의 존망이 달린 전쟁에서 국가는 가능한 모든 자원과 수단을 동원하여 총력전을 치른다. 일개미와 병정개미가 온 힘을 다해 싸우는 것처럼 총력전에서 민군관계는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이다. 군이 민군관계를 학문의 영역으로 확대하여 다루며, 중요한 군사작전의 한 형태로 교리발전을 시키는 이유이다.
명량해전은 이순신 장군이 이끈 조선 수군만의 싸움이 아니었다. 노약자와 어린이는 포작선(평시에는 어선, 전시에는 군량 등의 수송선)을 타고 판옥선(조선 수군의 전함) 뒤에서 징과 북을 울리며 조선 수군을 응원했다. 부녀자들은 해안가에서 강강술래를 돌며 조선 수군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전쟁터에서 이러한 민군협력이 가능했던 것은 평소 보여준 이순신 장군의 애민정신 덕분이었다.
1592년 6월 5일 당항포 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적선 26척 중 25척을 수장시킨다. 적선 1대는 의도적으로 남긴 것이다. 해전에서 수세에 몰린 적이 육지로 피하게 되면 분명 우리 백성들을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1597년 8월 3일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른 이순신 장군은 무너진 수군을 일으키기 위해 병기와 병사를 모으고 있었다. 호남 각지를 돌아다니던 중 곡성(옥과)에서 피난민 무리를 만난 이순신 장군은 말에서 내려 진심으로 백성들을 위로했다.
이처럼 이순신 장군은 백성을 사랑하는 남다른 마음을 가졌다. 그 마음이 백성들에게 각인되었기에 여러 곳에서 피난민, 자원병, 의병, 승병들이 조선 수군에 모여든 것이다. 애민정신이 곧 민군협력을 가능케 한 큰 힘이다.
우리 ‘군’은 ‘민’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까? 군에 대한 국민의 사랑과 지지와 달리 민군관계가 우호적이라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특히, 군사시설 주변지역에서 군부대 주둔에 따른 재산권 행사 및 활동에 제약이 많아 갈등의 골이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 군사시설보호구역은 국토 면적의 8.2%에 달한다. 70% 정도를 차지하는 산지를 제외하면, 국민이 느끼는 체감 규모는 이보다 더 클 것이다.
매해 국민 재산권과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국방부에서는 군사시설보호구역을 해제해 왔다. 올해는 1억 평 이상을 해제한다고 한다. 군사작전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여 군사시설보호구역 일부를 꾸준히 해제해 왔지만, 이번 해제는 전대미문의 규모를 자랑한다.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는 매해 발표가 있는 날이면 신문의 1면 머리기사로 다뤄진다. 그만큼 국민들에게는 군사시설보호구역이 끼치는 불편함이 적지 않다.
한편, 주무 부처인 국방부에서 군사시설보호구역에 관한 군무(軍務)를 다루는 군사시설기획관실은 타 부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상이 낮아 보인다. 아마도 국방부로서는 다른 군무에 비해 군사시설에 관한 군무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일 것이다.
군사시설기획관실에서는 국방·군사시설 유지 및 건설을 포함하여 국유재산, 군사시설 재배치, 군 환경정책, 군 주거지원, 주한미군 부대 이전, 군 관련 국토종합계획 등을 다룬다. 이들 업무의 공통적 특징은 일반적 군무와 달리 국민의 재산권 및 생활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국민신문고를 통해 접수된 수많은 국방 관련 민원 가운데 상당 수가 군사시설기획관실에서 다뤄진다.
이러한 차에 군은 이전에 없는 대규모 군사시설 사업을 목전에 두고 있다. 바로 국방개혁에 따른 군부대 이전, 통합 및 폐쇄이다. 군부대 주둔에 따른 군사시설 주변지역의 피해를 줄이는데 큰 기대가 모이고 있다. 그런 반면 군부대가 떠난 뒤 예상치 못한 피해가 하나둘씩 속출하고 있다.
국방개혁이 추진되면서 군부대가 주둔했던 지역에서의 경기침체 및 주민이탈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강원도 양구, 화천 등은 군부대가 빠지면서 지역경제가 급전직하로 추락하여 지역소멸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시선을 돌려 미군의 BRAC(Base Realignment and Closure, 美 군부대 재배치 및 감축) 사업을 살펴보자. 전후 군축의 필요성에 따라 군부대 이전과 통합, 그리고 재배치가 이루어졌다. 당시 미군은 군부대 외에도 군부대가 주둔했던 군사시설 주변지역을 철저히 배려했다. 즉, 군부대가 떠난 도시에 산업 및 경제활동의 터전을 마련해 준 것이다. 현재 미 국방부에 있는 생뚱맞은 경제지원국은 당시 BRAC의 후신이다. 지금도 여전히 민군협력을 위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군사시설이 민군갈등이 아닌 민군협력을 불러온 선례가 된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군인만 싸우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국가 총력전이다. 군은 민의 지지가 없으면 싸울 수 없고, 민도 군이 없으면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을 수 없다. 민군협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국방개혁이 한창 진행 중이다. 무기체계에서부터 병력운용까지 수많은 분야에서 환골탈태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군사시설은 미국, 일본 등의 선례에서 보듯 국방개혁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이다. 군사시설이 성공적인 국방개혁과 지속발전가능한 민군관계를 이루는 효자 노릇을 하길 기대한다.
마오쩌둥은 “인민은 물이고, 군대는 물고기”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