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데이비드 보위의 ‘히어로즈’와 DMZ 유적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DMZ유적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남북 민간단체 함께 추진을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영국 록 가수 데이비드 로버트 존스(David Robert Jones)의 예명(藝名)이다. 작사, 작곡, 가수를 한꺼번에 하는 싱어송라이터다. 음악에 대한 이해와 자신만의 음악적 취향을 바탕으로 삶을 마감할 때까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불후의 명곡을 많이 남겼다. 대표 앨범으로 ‘히어로즈'(Heroes, 1977년)가 포함된 ‘베를린 3부작’이 있다.
1987년 독일 베를린 장벽 인근에서 데이비드 보위는 독일 통일을 염원하며 히어로즈를 열창한다. 베를린 장벽을 넘은 가사는 동독까지 전해진다. 수많은 동독 시민이 장벽 가까이 모이기 시작한다. 이내 이들은 데이비드 보위를 따라 히어로즈를 함께 부른다. 동독 경찰이 물대포로 군중들을 해산시키지만 독일 통일을 바라는 평화 시위는 계속된다.
데이비드 보위가 히어로즈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자세히 이해하긴 어렵다. 다만, 음반 작업을 베를린에서 한 것부터, 그로부터 10년 후 베를린 장벽에 올라 공연을 한 것은 분명 독일 통일을 향한 외침이었다. 숱한 역경 가운데 단 하루만이라도 연인과 함께하고픈 사무치는 그리움을 가사에 담았다. 베를린 장벽으로 갈라진 가족과 친구들이 하루빨리 만나 가족애와 우정을 함께 나누고픈 독일인의 바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짐작된다.
열창이 있은 지 아흐레 후,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베를린 장벽 붕괴를 촉구하는 연설이 이어진다. 이후로 동서독의 교류가 활발히 이뤄진다. 데이비드 보위의 공연이 있은지 10년 후 거짓말처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다. 데이비드 보위의 기여는 미미했을지 모르나, 독일 민족의 정체성을 일깨운 것만은 확실하다. 이 민족 정체성이 통일을 이루는 위대한 힘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울러, 독일 통일에서 데이비드 보위를 포함한 민간의 끊임없는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닫게 해주었다.
시선을 한반도로 돌려보자. 우리도 남과 북이 하나의 민족인 까닭에 한반도 통일은 우리의 염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70년이라는 세월을 지나면서 이 주장이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어 안타깝다.
하지만, 분명 우리와 북한은 하나의 민족이다. 과거 인륜적 차원의 목적을 가진 전후 세대를 위한 통일을 넘어서, 미래 세대를 위한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즉, 통일은 동북아, 나아가 국제사회의 중심이 되기 위한 번영의 터전을 마련하는 귀한 숙원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통일의 목적은 변할 수 있지만, 남과 북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변하지 않는 정체성은 통일을 이루는 데 굉장한 힘이 될 것이다. 우리와 북한을 갈라놓은 DMZ(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에는 수많은 유적이 있다. 우리가 북한과 공유하는 동일한 역사의 흔적이다.
후삼국시대 태봉국의 ‘철원성(철원)’이 있다. 월정리역(철원)에서 가까운 우리 측 DMZ에 있다. 철원성에 연하여 군사분계선 북쪽으로는 고려의 태조 왕건이 즉위식을 올린 ‘포정전(철원)’이 있다. 이 유적들에 대해 학계에서는 학술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하지만, 지금은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있다.
이들 외에도 DMZ에는 역사 유적이 즐비하다. 임진강 주변은 선사시대 문명이 만개한 곳으로 추측한다. 사찰 터인 ‘창화사지(파주)’와 ‘가곡리사지(연천)’, 석성(石城)을 대표하는 ‘고장리산성(연천)’과 ‘성재산성(김화)’은 삼국시대 유적이다. DMZ 유적 발굴이 이루어지면 세 나라의 전성기를 가져온 한강 쟁탈전에 한탄강과 임진강이 더해질 수도 있다. 우리의 역사가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상감청자 조각이 즐비하게 출토되는 곳도 있다. DMZ 순찰 중에 발견된 ‘목 잘린 미륵불(파주)’은 신체 비율과 옷 모양에서 고려시대 유적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 유적도 많다. 홍건적 무리의 사체를 모아 돌로 매장한 ‘매두분(김화)’이 있다. 병자호란에서 청군을 궤멸시킨 기마 대첩의 영웅들을 기리는 ‘전골층(철원)’도 있다.
이처럼 DMZ에는 반만년에 걸친 우리 민족의 역사가 곳곳에 숨어있다. 한때 남북이 공동으로 DMZ 유적을 <유네스코(UNESCO,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뜻을 모으기도 했다. 이는 정부 주도의 사업이었다.
하지만, 지뢰가 유적 주변에 지천으로 깔려있고, 냉온을 오가는 한반도 정세는 정부 주도 사업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당연히 복원은커녕 기초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학술계 등 남북의 민간단체가 힘을 모아 DMZ 문화유적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 좋겠다.
유네스코는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지정하는 인류의 ‘보편적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한다. 여기서 보편적 유산은 ①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②국경을 초월하여 독보적이며 ③현재와 미래 세대의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중요한 것을 의미한다.
DMZ 안에서의 생태환경은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수많은 유적지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손색이 없다. 이 차에 DMZ를 통째로 문화적, 자연적 보존 가치를 함께 담은 ‘유네스코 복합유산’으로 등재할 수도 있다. 유네스코 복합유산은 자연유산과 문화유산과 달리 등재가 쉽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도 등재된 것이 많지 않다.
데이비드 보위의 공연히 있고 난 뒤, 독일 통일이 갑작스레 이루어졌다. 마찬가지로 DMZ 유적을 조사하고, 발굴하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사업을 남북의 민간단체가 공동으로 추진한다면, 통일을 앞당기는 큰 계기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우리의 통일도 갑작스레 찾아올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