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북핵 억제력 위한 핵무장, ‘핵 보유’보다 ‘핵 공유’를…”

1590년 황윤길과 김성일은 각각 조선통신사의 정사와 부사로 임명되어 다대포를 떠나 대마도에 도착한다. 이듬해 일본 교토를 방문하고 돌아온 두 사람은 전쟁의 발발 가능성을 서로 다르게 보고한다. 김성일은 눈이 쥐와 같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을 일으킬 인물감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반대로 황윤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뛰어난 지략과 담대함을 간파하고, 머지않아 일본이 조선을 침공할 것이라 간언한다.

통신사 수행 과정에서 보여준 김성일의 뻣뻣한 면면에서 경직된 명분과 편협한 사고가 낳을 엉터리 보고는 충분히 예상된 바였다. 하지만, 당파싸움이 극에 달한 시기였기에 집권세력(동인)에 속한 김성일의 주장에 힘이 실린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통신사가 돌아온 이듬해, 조선은 이렇다 할 방비를 못한 채 온 나라가 짓밟히는 임진왜란을 맞닥뜨린다.

최근 다수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북한의 핵무기 대응을 위한 남한의 자체 핵무장에 대한 찬성 목소리가 더 크다. 상호확증 파괴, 즉 공포의 균형을 통해 핵 억제력을 갖추자는 주장이다. 언뜻 보아서는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한편, 이 주장은 위기관리에 관한 단면(單面)만 고려한 한계가 없지 않다. 조선통신사 김성일처럼 경직된 명분과 편협한 사고로 핵 억제력 이외에 국가경제, 국제관계, 방위산업 등 다면(多面)적 영향을 간과한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국가전략 단계의 안보 이슈는 국가경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대표적 사례가 많은 경제학자들이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기여도 측면에서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보다 수위에 놓고 있는 한미수호방위조약이다. 안보 조약이 경제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분석이다.

북한이 2024년 5월 17일 탄도미사일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다. 북한은 4월 22일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인 600㎜ 초대형 방사포 발사를 감행한 지 25일 만에 다시 도발에 나선 것이다. <사진 연합>

동북아라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교차점에서 국제관계 또한 무시할 수 없다. ​1949년 미국 조야에서는 남한이 자유세계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폭넓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 인식은 미 극동 방위선, 즉 애치슨라인을 38도선에서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로 옮기는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친다. 안타깝게도 이듬해 한반도에는 끔찍한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다.

방위산업은 이제 우리나라의 기간산업이다. 자체 핵무장이 눈부신 K-방산의 진격을 주저케 할 소지도 있다. 나아가 핵무기를 핑계로 우리 군의 존재 필요성을 부정하는 그릇된 주장이 등장할 우려도 없지 않다.

핵 억제력을 갖기 위한 핵무장은 마땅히 바라는 바이다. 하지만, 핵 억제력 이외의 여러 측면을 고려하면 현시점에서 자체 핵무장은 시기상조일 수 있다. 국제사회는 냉정하다. 자체 핵무장을 원한다면 해양세력의 전진기지, 대륙 진출의 교두보라는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나아가 지경학적 존재감에 흔들림이 없는 힘이 있어야 한다.

자체 핵무장 외에는 핵 억제력이 없는가? 평시엔 다중이용시설, 유사시에는 대피소로 운용할 수 있는 방호시설 구축은 핵 억제력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다. 북유럽 국가들이 핵무기 보유를 철회하고, 핵방호시설 구축으로 선회하여 충분한 핵 억제력을 갖춘 것이 대표적 선례이다. 아울러, 우리 군이 전략사령부 창설을 통해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는 3축 체계(Kill-Chain, KMPR, KAMD) 또한 강력한 북한 핵무기 억제수단이다. ​

그런데도 핵무장을 원한다면 핵 ‘보유’가 아닌 핵 ‘공유’를 제안한다. 사실 이 안은 2019년 미 국방대학교에서 이미 제기된 바 있다. 핵심은 우리나라와 일본 등의 영토에 미 전술핵을 반입하고, 이를 미국과 함께 운용하는 것이다. 실례로 ‘NATO식 핵 공유’에서는 미 (전술)핵무기 240발을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에 분산배치하고 있다. ​​최근 이시바 일본 총리가 유사한 주장을 펴고 있다. 그는 아시아에 유럽 NATO와 같은 집단방어체제를 구축하고, 이 틀 안에서 미 전술핵을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자체 핵무장에 따른 실(失)은 피하고, 핵 공유를 통해 핵 억제력을 포함한 여러 면에서 득(得)을 유지하는 것. 국민 과반이 자체 핵 보유에 찬성하더라도 냉정한 국제사회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이 아닐까?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신약성경> 마태복음 10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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