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통일독일에서 배우는 남북한 DMZ 활용법

독일 뫼들라로이트(Mödlareuth) 국경박물관

DMZ에 남북 잇는 철도·도로에 국제기구 유치를

독일에는 ‘뫼들라로이트(Mödlareuth)’라는 작고 평화로운 마을이 있다. 두 개의 행정구역을 가진 이 마을은 ‘작은 베를린’으로 불리며 세계적 유명세를 타고 있다.

1945년 5월 7일 독일군은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한다. 이후 독일은 연합군에 의한 군정을 받게 되고, 동시에 냉전의 무대가 된다. 이 시기 독일은 냉전의 상황에서도 아무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결국 1949년 각각의 헌법을 가진 동·서독으로 분리된다.

당시 베를린市가 ‘베를린장벽’을 사이에 두고 둘로 쪼개진 것처럼, 뫼들라로이트 마을 역시 실개천을 사이에 두고 둘로 나뉜다. 이때 서독 진영의 바이에른州에 속한 퇴펜(Töpen)과 동독 진영의 튀링겐州에 속한 게펠(Gefell)이라는 두 행정구역이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한 마을에 그대로 남아있다.

동독에 속한 게펠은 밤낮없이 엄격한 감시가 이루어진다. 반면, 서독에 속한 퇴펜은 분단을 상징하는 관광지가 된다. 1966년 자유화에 대한 두려움에 동독은 이 마을에 철조망, 지뢰, 부비트랩 등으로 구성된 ‘철의 장막’을 설치하고, 두 행정구역을 완전히 차단해 버린다. 한 마을이 된 지금도 두 행정구역은 그대로 남아 우편번호, 지역번호, 투표 결과, 학생들이 배정받는 학교 등을 별도로 운용한다.

한편, 지금은 독일 분단의 상징이었던 뫼들라로이트가 독일 통일의 상징으로 바뀌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뫼들라로이트를 갈라놓은 철의 장막도 뚫려 길이 놓인다. 당시 세워진 장벽은 독일 통일이 공식적으로 천명되기 전에 불도저로 철거되어 일부만 남는다. 철의 장벽을 뚫은 길에 연해 철거하고 남은 장벽을 살려 1994년 이 마을에는 야외 박물관이 개관한다. 전체 주민이 50명 남짓이지만, 해마다 이 마을을 1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고 있다. 분단과 재통일이 독일 역사교육과 함께 지역경제에 엄청난 활력이 된 것이다.

냉전 시기 동서독을 나누었던 1,393km의 국경선에는 최북단 국경통과소가 있던 발트해 연안의 뤼벡(Lübeck)의 쉬루툽(Schlutup)에서부터 체코슬로바키아 국경에 맞닿은 미텔함머(Mittelhammer) 사이에 9개 도로와 7개의 철도가 관통하고 있었다. 이들 도로와 철도에 연하여 세워진 여러 박물관과 기념비 등도 수많은 이들을 맞이하고 있다.

한반도 역시 약 250km의 군사분계선에 문산(南)에서 개성(北)을 잇는 폭 250m의 경의선, 강릉(南)에서 속초(南), 제진(南)을 거쳐 금강산(北)까지 이어지는 폭 100m의 동해선이 놓여있다. 동시에 차량 통행을 위한 도로를 두 철도와 나란히 닦아 놓았다. 서해선은 목포(南)에서 신의주(北)까지 이어지던 ‘국도 1호선’, 동해선은 부산(南)에서 온성(北)까지 이어지던 ‘국도 7호’의 일부 구간들이다.

DMZ 비무장지대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 가운데 하나였던 철원(南) 화살머리 고지에도 DMZ(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를 관통하여 북한까지 이어지는 폭 12미터의 군사도로가 뚫렸다. 이 도로는 남해(南)와 초산(北)을 이어 한반도의 중앙을 관통하는 ‘국도 3호선’의 일부이다. 이 외에도 경원선(철원), 금강산 전기철도(김화) 등 한 때 철마가 달리고픈 철도의 흔적이 여럿 있다.

한편, 도로와 철도가 남북을 잇고 있지만, 우리의 현실은 독일과 많이 다르다. 독일은 동서독 간 왕래가 어느 정도 가능했지만, 우리는 거의 단절되어 있다. 인프라를 통한 남북교류, 나아가 통일 대한민국을 기대할 수 없어 안타깝다.

남북을 잇는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이를 통해 남북교류를 활성화하여 통일을 앞당길 수는 없을까? 해답으로 DMZ를 관통하는 철도와 도로에 연하여 중립적 성격의 국제기구 유치를 제안한다.

우리가 알고 혹은 모르는 사이에 우리나라에는 적지 않은 국제기구가 들어와 있다. GCF(Green Climate Fund, 녹색기후기금), GGGI(Global Greem Growth, 글로벌녹색성장기구), IVI(International Vaccine Institute, 국제백신연구소) 등은 본부를 우리나라에 두고 있다.

북한 사회의 인권 개선을 목표로 하는 OHCHR(Office of the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처럼 북한사회를 직접 겨냥하는 국제기구, 해마다 철새가 오고가는 DMZ에서 큰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EAAFP(East Asian-Australasian Flyway Partnership,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파트너십)도 본부를 우리나라에 두고 있다.

UNESC(United Nations Economic and Social Commission, 유엔경제사회위원회), UNCITRAL(United Nations Commission on International Trade Law,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 UNDRR(United Nations Disaster Risk Reduction, 유엔재난위험경감사무국) 등은 동북아 혹은 아시아-태평양 중심국가인 우리나라에 지역사무소를 두고 있다.

UNHCR(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 유엔난민기구), ION(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Migration, 국제이주기구), WFP(World Food Programme, 세계식량계획), UNICEF(United Nations Children’s Fund, 유엔아동기금) 등과 같이 북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국제기구 지역사무소도 여럿 있다.

DMZ에 남북을 잇는 철도와 도로에 연하여 국제기구를 설치한다면 철저히 봉쇄된 남북한 왕래에 작은 물꼬라도 틔울 수 있을 것이다. 이 물꼬가 큰 물결이 되면 국제사회와 단절된 북한사회를 변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국제기구들은 DMZ라는 의미있는 곳에서 나름의 설립 목적과 취지에 부합하는 활동을 적극 전개할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을 수행하는 국제기구가 통일 한반도를 준비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해 줄 것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아울러, DMZ를 생태공원, 역사유적과 더불어 국내외 수많은 이들이 찾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 것이다.

DMZ 생태공원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통일의 기대를 새롭게 할 것이다. 남북이 힘을 모아 DMZ 역사유적을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사업은 하나의 뿌리를 둔 우리와 북한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 줄 것이다. 

끝으로, DMZ를 관통하는 철도와 도로에 연한 국제기구 유치는 국제사회의 큰 관심과 지지를 얻어 세계평화의 이정표가 될 통일을 준비하는 마중물이 될 전망이다. DMZ에서 출발하는 통일, 세계로 뻗어나갈 번영하는 대한민국의 내일을 열어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오늘 우리 독일인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민족이다.”(독일이 통일되던 날, 베를린 발터 몸퍼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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