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거대언어모델(LLM), 건설업 디지털 전환을 위한 가속페달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역사학자 이언 모리스(Ian Morris)는 저서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Why the West rules for now>에서 기원전 1만4000여년부터 현재까지 동서양의 발전 과정을 다루었다. 책의 내용을 빌리자면, 약 AD 5∼7세기까지는 서양이 동양보다 사회발전 측면에서 약간 앞섰지만, 그 차이는 무의미한 수준이었다.

이후 AD 16∼17세기까지 1000여년간 동양이 서양보다 앞섰다. 이 시기 동양은 농업을 발전시키고, 다양한 인재를 등용했다. 반대로 서양은 시대 변화에 눈을 감았고, 시대를 이끌 인재 등용에 실패했다.

한편, 17세기부터 동양은 기존 사회발전의 원동력인 농업과 명분에 발목을 잡혔고, 반대로 서양은 몰락 원인을 발판 삼아 산업화를 이루어냈다. 이 산업화를 기점으로 동서양의 차이는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지게 되었다.

동서양의 사회발전 수준에 대한 연대기적 비교는 변화에 대응해야 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필자가 몸담은 건설에도 낮은 생산성을 반등시킬 계기가 절실하다. 이대로 사양산업이 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계기를 기회로 다시금 뛰어오를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그 계기는 다름 아닌 ‘디지털 전환’이라고 확신한다.

절실하지만 쉽지 않은 건설업 디지털 전환

일반 제조업에서는 찾기 힘든 독특한 특성이 건설업에는 여럿 있다. 생산물마다 주문자가 달라 매번 다른 생산물을 만들어야 한다. 생산 활동이 주로 실외에서 이루어진다. 생산 기간이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십년 걸리기도 한다. 이에 따라 다양한 외부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건설업의 독특한 산업적 특성 탓에 건설회사는 생산에 필요한 모든 수단을 보유하기 어렵다. 하도급이 불가피한 산업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아울러, 생산활동 자체의 표준화가 쉽지 않아 관리자와 기술자의 경험에 따른 의사결정이 중요하다.

한편 건설 생산물이 복잡화·대형화 추세이지만, 이를 뒷받침할 전문성과 숙련도를 가진 인력이 부족하다. MZ세대로 불리는 청년들에게 건설업은 힘들고 인기 없는 산업인 탓에 신규 인력의 유입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빈자리를 외국인 근로자로 채우거나 노령의 근로자들이 이어가고 있다.

건설업 베테랑들의 노하우 전수 단절은 건설업 전반의 생산성 저하는 물론 역량과 수준의 저하까지 불러오고 있다. 이젠 경험이 아닌 데이터로 돌파구를 찾는 것이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시기가 도래했다.

건설업은 매번 다른 프로젝트를 일회성으로 수행한다. 이에 따라 여타 제조업과는 달리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활용하는 디지털화가 녹록지 않다. 추가하여 정형화가 쉬운 텍스트 데이터 외에도 이미지(도면, 사진 등), 영상, 음성 등의 비정형 데이터가 혼재되어 있어 AI, 빅데이터 기술의 도입에 적지 않은 한계가 있다.

건설업에서의 커뮤니케이션 한계

건설업은 분야별 전문가들 사이에서 사업이 이루어진다. 발주자가 전문성이 부족하면, 건설프로젝트 전문가가 발주자를 대리하여 사업을 진행한다. 당연히 이해당사자들 사이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이 전문적이거나 기술적일 수밖에 없다.

한편 건설업 가운데 주택사업 분야는 예외이다. 건설사가 비전문가인 일반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B2C(Business to Customer) 사업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일반 소비자와 건설사 간 커뮤니케이션에 많은 오해와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적 문제는 입주 시기에 하자 이슈에서 많이 발생한다. 소비자로서는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새 아파트에 입주한다. 당연히 완벽한 품질을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작은 흠집, 오염, 단차 등 상대적으로 작은 문제에서부터, 시공 불량, 누수, 균열 등 큰 문제까지 다양한 하자들이 발견된다.

이러한 하자에 대한 소비자의 조치 요구에 건설업은 지극히 기술적으로만 접근하고 있다. 건설사는 접수된 하자를 협력업체를 통해 처리하기 위한 프로세스와 데이터에 주로 신경을 쓴다. 이러다 보니 일반 소비자가 가질 수 있는 불만이 협력업체 수준에서 사전에 차단되어 건설사로 올곧이 전달되기 힘든 구조이다. 이에 따라 건설사는 소비자 만족을 위한 품질관리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가 없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거대언어모델(LLM)


LLM 등장이 가져온 건설업의 디지털 혁신 가능성

최근 챗GPT를 필두로 한 생성형 LLM(Large Language Model, 거대언어모델)을 활용한 AI가 등장하고, 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혁신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LLM은 챗봇이나 AI 비서 등의 형태로 고객서비스에서 여러 성공 사례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건설업에서 LLM을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에 활용할 수도 있다. 건설사는 하자 접수와 처리에 대한 데이터는 협력업체를 통해 확보한다. 하자 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데이터이기에 고객의 입장을 직접 분석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건설사가 고객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콜센터 등의 채널을 통해 고객의 목소리를 자연어 형태로 고스란히 담을 수 있다. 콜센터의 방대한 음성 데이터를 챗GPT와 같은 LLM 모델을 통해 건설사가 직접 고객의 불만족을 분석하여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고객이 비전문적이더라도 이제는 더 이상 건설사가 협력업체를 통해 하자를 접수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고객의 불만 사항을 건설사가 활용할 수 있는 전문적 수준의 정량화가 가능해졌다.

서비스 만족도도 컸다. 경험이 아닌 데이터에 의한 하자 대응은 데이터 수가 커질수록 더 높은 신뢰도로 이어진 것이다.

주택 하자 외에도 건설사가 업무 중에 생성하고 관리하는 데이터는 방대하다. 계약서, 법령, 기준, 보고서 등은 물론이고 설계도서, 사진에서 CCTV 영상, 음성까지 다양하다.

기존의 키워드 기반의 텍스트 분석으로는 한계가 있었던 다양하고 방대한 건설 데이터의 활용이 이제는 LLM의 눈부신 발전 덕에 가능해졌다. 건설업의 디지털 전환이 진일보 발전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건설업의 준비 사항

LLM과 같은 디지털 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모든 산업이 변화를 맞고 있다. 건설업도 예외가 아니다. 더 이상 건설업의 특성으로 인해 한계가 있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건설업에 대한 인식 개선이나 인력 확보를 위한 저차원적 문제가 아니라, 수십 년간 지속되어 온 건설업에서의 일하는 방식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바꾸는 고차원적 문제이다. 이를 디지털 전환이라고 부른다.

이제 디지털 전환은 건설업에서의 선도 기업 여부가 아니고 생존과 직결된 요구이다. 생존을 위하여 다음의 세 가지에 대한 투자와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사람의 경험에 의존하고 노하우가 전수되어 오던 방식은 디지털화된 정보, 즉 데이터를 통한 업무수행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건설기업에서 30년을 일해 온 경험 많은 엔지니어도 짧게는 2∼3년, 길게는 5∼10년 걸리는 건설프로젝트를 수 개 이상 경험하기 어렵다. 하지만 대형 건설기업은 수십 년간 수없이 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건설프로젝트가 데이터 기반의 디지털 전환 체계를 잘 갖춘다면 모든 구성원이 수백∼수천 개의 프로젝트 경험을 보유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빠르게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들을 활용하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LLM도 건설업에서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했지만, 이미 챗GPT로 유명한 오픈AI사의 DALL·E처럼 이미지를 생성하여 처리하는 AI 모델들이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다. 최근 구글에서 출시한 제미나이(Gemini)는 더 이상 텍스트 데이터만 처리하는 LLM이 아니다. 이미지, 영상, 음성까지 다양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거대 멀티모달 모델(LMM, Large, Multi-Modal, Model)을 표방하고 있다. 건설업에서도 계약서나 시방서 등의 텍스트 데이터뿐만 아니라 도면, 사진, CCTV 영상 등의 데이터까지 활용하여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할 가능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

끝으로, 건설사도 IT기업 못지않은 인프라와 인력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LLM과 같은 AI 기술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관련 전담 조직을 만들고, 전문인력을 확보하여 육성해야 한다. 아울러, 데이터의 저장, 활용, 인공지능학습, 서비스 개발에 필요한 클라우드, GPU 등의 AI 하드웨어가 뒷받침될 수 있도록 인프라에 대한 투자도 병행되어야 한다.

건설업의 변화와 미래

건설업에 LLM과 같은 기술이 적용되어 Best Practice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선결되어야 할 사항들이 많다. 기업의 정보보안 때문에 챗GPT와 같은 상용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에 사내 데이터를 올릴 수 없는 문제도 있다. 자체 LLM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고사양 서버에 거액을 투자하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충분한 학습과 검증이 없으면 발생하는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환각) 현상으로 잘못된 결과가 도출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기술은 계속 개발되고 변화한다. sLLM(Small LLM)이라고 불리는 작은 규모의 언어모델도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우리나라 스타트업인 업스테이지가 선보인 ‘솔라’는 sLLM에서 세계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소규모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AI에 학습시키는 기술들도 연구 개발되고 있으므로 근시일 내에 건설업에서도 LLM을 활용한 더 많은 다양한 사례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LLM이 보편화되는 시점에 가장 경쟁력 기업은 어떤 기업일까? 디지털 전환에 성공한 기업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건설업계는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통해 건설사 내부 구성원들의 공감대 형성을 통한 디지털 문화를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아울러, 데이터를 잘 확보하여 운용할 수 있는 준비와 투자에 더 공격적이어야 할 것이다.

다시 이언 모리스로 돌아가자. 그 옛날 동양이 서양에 앞선 것은 발 빠른 농업화 전환 덕분일 것이다. 한편, 17세기를 기점으로 서양이 동양에 역전한 것은, 그리고 그 차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진 것은 기술 기반의 산업혁명 선점 때문일 것이다. 이제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 산맥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이 파고를 슬기롭게 먼저 넘는 자가 지구상의 새로운 강자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건설업에서도 수십 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경험 중심의 기업이 막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디지털 전환을 일군 신생기업에 뒤처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 시간이 화살처럼 달려오고 있다.

변화는 삶의 법칙이다. 과거와 현재를 고수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미래를 놓치게 될 것이다. <존 F. 케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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