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챗GPT가 쏘아올린 AI 기술전쟁, 대의명분을 찾아라
전쟁은 국가 중대사이다. 승리를 위해선 대의명분이 필요하다. 대의명분을 세우기 위해서는 도·천·지·장·법(道ㆍ天ㆍ地ㆍ將ㆍ法)을 두루 살펴야 한다.
투기 디데스(Thucy Dides)는 필로폰네소스 전쟁을 바라보면서 “전쟁은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탐욕이 전쟁을 일으키면, 내부 단결을 끌어내기 어렵고, 외부 지원과 협조를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전쟁에 임함에 있어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욕심은 감추고, 도·천·지·장·법을 바탕으로 만인이 공감할 수 있는 대의명분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오픈AI 최고경영자 샘 올트만의 해임과 복귀 사태는 AI 기술개발에 대한 윤리 문제에서 촉발된 면이 짙다. 인류 공헌이라는 AI 기술개발의 대의명분이 챗GPT의 성공에 취해 흔들린 면이 없지 않다. 먼 훗날 이번 사태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AI 기술개발 전쟁을 촉발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앞으로 AI 기술개발이 흘러갈 방향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쟁의 흐름을 알아야 적시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듯이, AI 기술개발의 방향을 읽어야 AI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SCENE 1 : AI 부머와 두머
샘 올트만이 오픈AI 최고경영자로 복귀하면서 AI 부머(Boomer)들의 입지가 더 강해졌을지 모른다. 이들은 AI 기술개발에 대한 공격적 입장을 지지한다. AI 기술개발의 속도를 높이고, 상용화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던 샘 올트만은 새로운 이사회의 지지를 등에 업고 오픈AI의 사업 규모를 대폭 키울 것이다. 좁은 측면에서는 단순히 사업의 확장으로 볼 수 있지만, 넓은 측면에서는 AI 업계에 긴장감을 불러오고, 기술개발 경쟁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세계적 종합과학 저널인 <네이처>는 챗GPT와 함께 샘 알트만이 아닌 일리야 수츠케버(Ilya Sutskever)를 ‘네이처 10’에 선정하였다. AI의 발전에 대한 기여와 성과에 대해 박수를 보낸 것이다. 동시에 AI가 가짜 사실을 지어내고 악용될 수 있는 위험성에 더한 무게를 두고 AI 시장에 경고를 보낸 것이다.
일리야 수츠케버를 비롯한 AI 두머(Doomer)들은 AI 기술개발에 관한 신중론을 펴고 있다. AI가 인간에게 안전하고 유익한지 확인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이 이번 오픈AI 사태로 더 밝은 조명을 받게 된 면도 있다.
일리야 수츠케버는 AI, 더 나아가 인간의 지능과 동등한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인공일반지능)의 개발에 대해 산업계 내에서 치열한 논쟁을 이끌고 있다. 동시에 AI 기술개발에 대한 규제의 목소리를 거침없이 내놓고 있다.
향후 AI 두머들은 상황에 따라 AI 부머들에게 일대 반격을 가할지도 모른다. 오픈AI 안팎에서 AI 기술개발에 관한 두 세력의 대결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AI 부머와 두머는 분명 인류의 공헌을 위한 핵심 목표를 공유한다. 그러나 AI 부머는 공격적인 개발이 인류의 발전임을 자신한다. 반대로 AI 두머들은 AI 기술개발에서 신뢰와 안전을 우선적으로 확보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AI 부머들은 AI 기술개발 앞에서 지나치게 영리를 쫓는 상황을 늘 경계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AI 두머들은 기술시장에 뒤처져 사장되는 상황에 유의해야 한다. AI는 거대한 자본이 필요하고, 그래서 AI 부머들은 더더욱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분발할 것이다. 한편, 경쟁력만을 가져가기 위해 안전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AI 두머들의 주장도 소중히 살펴야 한다.
모든 곳에는 AI 부머와 두머가 존재한다. 그러기에 누가 AI 부머이고, 누가 AI 두머인지 알 수 없다. 경영진이 AI 부머들만 남기고 AI 두머들을 전부 해고할 수도 없다. 결과적으로 하나의 집단에 AI 부머와 두머가 공존하고, 충돌하며, 발전할 수밖에 없다.
SCENE 2 : 단일 실패점(Single Point of Failure) 차단
거대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 분야에서 챗GPT라는 기술 기반 서비스 덕에 오픈AI가 상대적으로 우월적 위치에 우뚝 선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분야는 Facebook이나 X(구 Twitter)와 같이 독점적 플랫폼 사업이 아닌 대안이 있는 시장이다. 오픈AI가 독점적 시장지배력을 행사하거나 혹은 회사 자체가 사라지더라도 LLM 기술의 공백이나 관련 스타트업들이 문 닫는 참사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샘 올트먼의 해임이 알려지자, 후발주자인 허깅페이스(Hugging Face) 등 LLM 기술개발 기업들의 주가가 올라가기도 했다. 이번 달에는 메타, IBM을 비롯한 50개 이상의 AI 기업과 기관들이 얼라이언스를 출범시키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챗GPT에 자존심이 구긴 구글은 오픈AI의 최신 GPT 모델보다 성능을 뛰어난 제미나이(Gemini) 모델을 전격 공개하기도 했다. 제미나이는 언어뿐 아니라 이미지나 비디오까지 이해하고 생성하는 대형 멀티모달 모델(LMM, Large Multimodal Model)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스타트업인 업스테이지에서 자체 개발한 LLM 모델 솔라(Solar)를 공개하며 글로벌 대전에 합류하였다. 솔라는 추론과 상식 능력, 언어 이해 종합능력 및 수학해결 능력등을 평가하는 오픈 LLM 리더보드에서 1위를 거머쥔 경량형 언어모델이다. 기업들이 쓰기 좋은 프라이빗 LLM 모델로 시장의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AI 공급시장에서는 독점적 생태계 파괴를 위해 많은 기업이 시장진입을 서두를 것이다. 아울러, AI 수요시장은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에 종속되는 것을 피하고자 다양한 대체 기술 공급처를 찾아 나설 것이다. 즉, 결코 단일 실패점(Single Point of Failure, 시스템 구성 요소 중에서, 동작하지 않으면 전체 시스템이 중단되는 단일 요소)의 폐해를 시장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독재자 타도를 위해 대의명분을 세운 개인과 집단이 등장한다. 이것이 인류의 역사이다.
SCENE 3 : LLM 시장에서 응용서비스
LLM을 비롯한 AI 기술들은 대규모 데이터를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시킬 수 있는 컴퓨팅 하드웨어와 데이터를 수집, 가공, 분석, 활용 및 저장할 수 있는 클라우드 서버도 필요로 한다. 또한 개발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응용 서비스도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LLM 시장을 구성하는 4대 영역을 ①LLM 개발 ②GPU 및 AI칩셋 반도체 ③클라우드 ④응용 서비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LLM 개발, 엔비디아(NVDIA)가 중심인 GPU 등의 반도체, 아마존웹서비스(AWS)와 같은 클라우드 시장은 기본적으로 막대한 데이터, 기술력 및 자본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러한 산업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미국과 중국 2강 구도로 세계시장이 재편될 소지가 크다.
한편, 응용 서비스 분야는 신생기업이나 스타트업을 포함한 후발 주자의 참여도 충분히 가능하다. 빅테크가 개발한 LLM 기술을 활용해 틈새시장에서 새로운 밸류 체인을 구축하고, 성공적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다. 해외에서는 LLM으로 구축한 생성형 AI를 활용한 재스퍼, 글린 같은 유니콘 기업이 생겨났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기업들이 챗GPT와 같은 상용 LLM을 활용하여 독창적인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이미 LLM을 활용해 사람처럼 서비스하는 AI 챗봇이나 AI 콜센터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아마존의 알렉사, 국내에선 네이버의 클로바가 대표적 모델이다.
디지털 전환이 가장 더딘 건설업에서도 공동주택의 하자에 있어 고객의 불만족 요인을 분석하는 데 활용하거나 대용량의 건설계약 문서를 검토하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플랜트나 건설에 특화된 대화형 AI, 건설사고 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고발생의 원인을 파악하는 알고리즘도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상용 LLM을 활용하여 각 산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장은 상대적으로 낮은 진입장벽과 높은 수요로 상승세에 있다.
강대국 사이에서 약소국은 화전양면 전략을 구사하면서 살아남는다. 이러한 전략에도 대의명분이 있어야 한다.
AI 기술전쟁의 최후 승자는?
이상의 세 국면으로 AI 기술전쟁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면의 흐름과 결과를 가늠할 수 있어야 AI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힘은 욕심이 아닌 대의명분을 따라 흐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나모리 가즈오. 일본 교세라 명예회장이다.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 세상사 복잡한 일들은 모두 원리원칙이 있다고 주장하며, ‘경영 12개 조’를 책으로 엮었다. 이 가운데 첫 번째 원칙이 ‘공명정대하고 대의명분이 높은 목적을 세우라’는 것이다.
AI 부머와 두머, LLM 시장의 거대기업 등장 및 LLM 응용서비스에서 승자는 대의명분을 올바로 세우고 지켜나가는 개인과 기업이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Don’t Be Evil.”(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