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스마트홈, 침체된 주택산업의 구원투수

출처 전자신문

“이스트먼 코닥, 아그파필름, 후지필름.” 한때 필름 카메라 시장을 주름잡던 절대 강자들이었다. 이 가운데 디지털 카메라 시장이 등장하면서 후지필름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에 대한 발 빠른 대응 덕분이었다.

후지필름은 2000년 美 제록스 지분 25%를 16억 달러에 사들여 후지제록스 합작회사를 만든다. 카메라 기술은 변하지만, 사진의 인화는 계속되는 시장의 본질을 예리하게 꿰뚫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기술을 중시하여 ‘후지필름선진연구소’를 설립하였다. 회사가 보유한 발전된 필름 기술에 전자, 화학 분야와의 기술융합을 시도했다. 덕분에 훗날 LCD(Liquid Crystal Display, 액정표시장치) TV, 콜라겐 화장품 등 새로운 시장을 지배하게 된다.

2020년 글로벌 컨설팅 기관인 언스트 앤 영(Earnst & Young)은 엔데믹 이후 펼쳐질 세상을 4대 뉴노멀(New Normal, 기존 체계와 다른 새로운 표준)로 예측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디지털 기술과 혁신’이다. 예측은 적중했다. 사회 제반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필자가 몸담은 건설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팬데믹이 인간의 일상을 바꿔버렸고,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했다. 당연히 현대인들은 더 편안하고 쾌적한 주거 환경에 관심이 높아졌다. 대표적으로 글로벌 표준 제정과 함께 뛰어난 연결성과 확장성을 바탕으로 시장을 키워가고 있는 스마트홈(Smart Home)을 들 수 있다.

스마트홈은 인터넷과 컴퓨터 기술 발전이 이루어지면서부터 언급된 개념이다. 1990년대에 다양한 전자장치가 등장하면서 주택에서도 출입문, 조명, 가전제품 등을 간편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힘입어 스마트홈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제는 사람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최적의 주거 환경을 저절로 조성해 주는 캄테크(Calm Technology) 덕분에 ‘지능형’ 스마트홈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이미 건강주택, 실내환경 센싱 등을 포함하여 우리가 상상해 봤을 법한 기능을 갖는 다양한 스마트홈 디바이스가 출시되어 있다. 이들을 잘 조합한다면 우리는 무궁무진한 맞춤형 스마트홈을 만들 수 있다.

스마트홈이 미래 대세로 입지를 확대해 나가자, 산업계에서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기존의 스마트홈 산업은 플랫폼 사업자에 종속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마음에 드는 A社의 스마트 기기를 찾았지만, 기존에 사용 중인 B社의 스마트홈 플랫폼과는 연동이 어려웠다. 마음에 드는 A社의 스마트 기기를 포기하거나, 비싸게 구축한 B社의 플랫폼을 바꿔야만 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애플, 구글, 아마존, 삼성, LG 등 글로벌 플랫폼, 가전, 제조업체가 주도하여 ‘스마트홈 표준 매터(Matter)’를 제정한 것이다.

매터는 글로벌 표준 단체인 CSA(Connectivity Standards Alliance)가 글로벌 스마트홈 업체들과 협업하여 스마트홈 기기들과 플랫폼의 상호운용성 달성을 목표로 개발한 오픈소스 표준이다. 물론 과거에도 여러 스마트홈 연동 표준이 제안되었지만, 성과가 미미했다. 하지만, 제조사나 통신사 중심으로 추진되던 기존 표준들과 다르게 이번 매터는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들이 주도하여 만들었다. 당연히 이용자 중심의 환경을 제공하므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플랫폼 연결 규격이 표준으로 정해지면 디바이스 제조사는 플랫폼 종속성을 벗어나 기능 구현에만 집중할 수 있고, 플랫폼 사업자는 구현된 디바이스를 활용하여 자신들만의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다.

매터는 인터넷 프로토콜(IP)을 기반으로 확장성이 뛰어난 스마트홈 구축을 지향한다. QR코드 스캔이나 디바이스의 전원을 켜는 단순한 동작만으로 네트워크에 등록할 수 있고, 디바이스와 플랫폼 간 직관적인 상호연동성을 바탕으로 하나의 디바이스를 동시에 여러 플랫폼에서 활용하는 멀티 어드민(Multi-Admin) 특성도 갖는다. 또한, 디바이스 인증과 블록체인 기반 보안 기술을 적용하여 높은 신뢰성과 안전성도 확보한다.

매터는 표준 버전을 높여가며 지원이 가능한 기기 유형을 확대해 가고 있다. 2022년 10월 발표된 1.0 버전에서는 조명기기, 팬 컨트롤, 냉난방기, 도어록, 안전 및 보안 센서, 블라인드, TV, 컨트롤러가 포함되었고, 올 10월 발표된 1.2 버전에서는 냉장고, 와인셀러,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유해가스 경보장치, 공기질 센서, 공기청정기, 선풍기가 포함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매터는 더 많은 디바이스들의 연결을 지원할 것이며, 스마트홈에서부터 스마트 빌딩, 스마트 시티까지도 생태계를 확장해 나갈 것이다.

우리 정부에서도 지능형 스마트홈에 대해 큰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매터의 적용 및 확산과 지능형 스마트홈 서비스 발굴을 목표로 정부 주도의 첫 매터 프로젝트 AI@Home이 2023년부터 수행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코맥스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디바이스, 스마트홈 플랫폼 확보와 함께 차별화된 서비스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음성, 제스처 인지 등이 가능한 편리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갖는 제품이 당연히 선호될 것이다.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되어 사람과 기계 간에 유연한 의사소통 기능도 등장할 것이다. 당연히 주택시장은 앞으로 더 거센 변화를 요구받을 것이다.

한 우물만 파야 성공할 수 있을까? 시장의 변화에 실패하여 망한 기업들의 공통점은 ‘생각없이’ 한 우물만 팠다는 것이다. 이스트먼 코닥, 아그파필름이 그러했다. 반면, 후지필름은 카메라가 아닌 사진 시장으로 활로를 예리하게 설정하여 사명을 ‘사진 문화를 지킨다’로 변경한다. 

건설업계도 고객이 원하는 본질이 아파트가 아닌 주거환경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후지필름은 필름 기술에서 출발하여 콜라겐 화장품, LCD TV 시장을 장악했다. 마찬가지로 건설업계도 건설기술의 바탕 위에 AI, 헬스케어 등의 기술을 덧입혀야 한다. 이것이 ‘생각하여’ 한 우물을 파는 전략이다.

스마트홈 시장에서 빅테크, 통신사, 제조사 등의 활발한 움직임에 비해 정작 생태계의 중심이 되어야 할 건설사는 걸음마 단계에 있어 안타까운 면이 없지 않다. 지금이라도 건설사가 이종 기업들과 매터를 기반으로 활발히 협력하여 침체에 빠진 건설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길 소망한다.

“가장 강하거나 가장 지능이 높은 종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 결국 살아남는다.” 찰스 다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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