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난중일기] “방위산업으로 안보와 경제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포스터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준세이(男)와 아오이(女)가 등장한다. 준세이는 첫사랑을 되돌리고 싶은 ‘열정’으로 가득하다. 반면, 아오이는 자신의 마음을 숨긴 채 ‘냉정’하게 현실을 살아간다. 비록 둘은 첫사랑에 대한 표현은 달랐지만, 서로 간의 진심을 알게 되어 밀라노 기차역에서 아름답게 재회한다.

냉정과 열정은 공동체에서도 많이 활용된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점진적 개선과 파괴적 혁신 사이에서 선택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전자는 기존 체계 내에서 점진적 개선을 이루기 위한 냉정이 필요하며, 후자는 신규 체계 도입을 위한 파괴적 혁신, 즉 열정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예로 파괴적 혁신과 점진적 개선을 오가며 동북아 최강의 수준에 오른 조선의 화포 체계를 들 수 있다. 조선 수군이 임진왜란에서 연전연승을 이룬 데에는 화포체계의 역할이 컸다.

조선의 화포체계 기술은 고려 우왕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최무선이 건의하여 설치한 화통도감이 실질적 기원이다. 이때 염초 제작 기술의 확보를 통해 독자적으로 화약을 생산하였고, 훗날 지자총통(地字銃筒)으로 불릴 화포의 효시가 될 기술을 개발한다.​

이후 조선 태종은 최무선의 아들 최해산을 중심으로 화포체계의 ‘파괴적 혁신’을 일으킨다. 천자문(千字文)을 넘버링한 공용 대형 화포인 천자총통(天字銃筒), 지자총통, 현자총통(玄字銃筒), 황자총통(黃字銃筒)의 체계를 완성한 것이다. 조선 세종은 총통에 사용되는 화약량을 줄이고, 발사체의 사거리를 연장하는 화포체계의 ‘점진적 개선’을 이룬다.

이는 성곽에서 방어전술을 구사하는 조선 육군이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조선 수군 역시 판옥선을 활용한 학익진을 펼쳐 육지에서의 성곽을 대신했을 뿐 싸우는 방식이 육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왜(倭) 수군이 우리의 판옥선에 올라타 백병전을 펼치는 등선육박(登船肉薄) 전술을 구사했다면, 조선 수군은 총통을 활용한 함포사격으로 왜 수군의 안택선을 격파하는 당파(撞破)가 주된 전술이었다.

화포체계의 바탕을 이루는 총통은 약통(격실), 격목통, 부리(포열)로 구성된다. 약통의 화약량에 따라 부리에 탑재되는 장군전(일종의 ‘대형 화살’)과 탄환을 800∼1,500여 보까지 날릴 수 있었다. 아울러, 조란탄(鳥卵彈)으로 30∼400여 발의 철환을 한꺼번에 날릴 수 있었다. 이 외에도 격목통 기능, 약통 및 부리의 청동 두께 등이 오늘날 ‘기술교범’과 유사하게 자세히 기록되었다.

​아울러 조선 수군이 지니고 다녔던 수첩크기의 ‘야전교범’과 유사한 기록을 통해 화포체계가 어떻게 운용되었는지 알 수 있다. 적선(敵船)이 200보까지 도달할 때를 기다리다가 지자총통이 먼저 불을 뿜는다. 이후 100∼200보에서는 현자총통과 황자총통이 운용된다. 끝으로 100보 이내로 적선이 접근하면, 승자총통, 국궁 등 개인화기로 적을 제압한다. 참고로, 천자총통은 위력에 비해 화약의 낭비가 심해 크게 활용되지 못했다.

한편, 조선 무기체계에 관한 자세한 기록들이 상당 부분 전해지지 않고 있다. 조선 세조가 명, 여진, 왜 등이 화포체계 기술을 탈취할 것을 우려하여 많은 기록을 한문(漢文)에서 언문(言文)으로 교체해 버린 탓이다. 하지만, 실질적 이유는 이 기술이 모반에 사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안타깝게도 세월이 흐르면서 조선의 숭문억무(崇文抑武) 기조 하에 화포체계는 더 이상의 혁신과 개선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당대 최고 수준을 구가하던 조선의 무기체계가 계속하여 파괴적 혁신과 점진적 개선을 거듭하였더라면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 정묘호란 등은 우리의 역사에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북벌론이 더욱 힘을 얻어 우리의 영토가 더 넓게 확장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는 글로벌 무기수출 시장에서 우리나라 점유율이 2.5%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독보적 수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 러시아, 프랑스를 제외하면 결코 낮지않은 수준이다.

강력한 군사력은 평화를 보장하는 절대적 수단이다. 향후 군사력은 첨단 무기체계에 더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다. 또한 경쟁력을 갖춘 무기체계는 선진국만이 구가하는 방산 수출에도 크게 기여한다. 방위산업으로 안보와 경제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의 무기체계 개발사를 교훈 삼아 한국형 무기체계에 대한 파괴적 혁신과 점진적 개선이 중단되지 않길 바란다.​

“Regret doesn’t come from failure, it comes from giving up.”(Mel Robbins)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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