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칼럼] ‘에너지 주권’ 향한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꿈’
해방 이후 우리 민족은 북위 38도, 소위 ‘삼팔선’을 기준하여 남북으로 나뉘게 된다. 이후 한국전쟁이 끝나면서 생긴 ‘휴전선’은 삼팔선에서 서측 경기도에서는 아래로 동측 강원도에서는 위로 놓인다. 동부전선에 비해 서부전선의 전략적 가치가 클 터이기에, 필자는 휴전선이 놓인 모습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승만 대통령이 미 8군사령관 밴 플리트(James Van Fleet) 장군에게 부탁한 간곡한 요청을 알게 되었다. 동부전선에서 강원도 화천 등 삼팔선 이북 지역을 꼭 확보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연유를 듣고서 지도자의 혜안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남한에 기습남침을 감행한다. 파죽지세로 몰리던 우리는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리게 된다. 같은 해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면서 순식간에 역전의 발판이 마련된다. 이제는 파상공세로 북진하여 평양을 돌파하고, 마침내 압록강 부근에 다다르는 승전보를 울리며 전쟁 종결을 코앞에 두게 된다.
하지만, 이듬해 1월 4일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다시 서울을 뺏기는 등 북위 37도선까지 밀려난다. 이때부터 휴전 제의가 오가며, 장작 2년여 동안 북위 38도를 연하여 치열한 진지전이 이어진다.
한편, 해방 직후 북한은 우리에게 공급해 주던 전력을 1948년 5월 14일 정오를 기점으로 별안간 중단한다. 해방 직전까지 남북한 발전량 145만9000kW 가운데 약 86%인 126만3000kW의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설비가 북한에 있었다. 북한의 일방적 단전에 남한 사회는 암흑 속에서 헤매게 된다.
이른바 ‘5.14 단전’을 겪으면서 이승만 대통령은 에너지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이 때 전후 재건을 위해 물과 에너지 확보의 필요성을 간파하고, 밴 플리트 장군에게 북한의 수중에 있던 화천지역의 탈환을 요청한다. 이로 인해 일진인퇴를 거듭하는 치열한 공방전 끝에 화천지역을 확보하면서 동부지역의 휴전선이 삼팔선 이북에 그어진 것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전후 우리나라가 에너지 부족에 허덕이고 있을 때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미국 전기기술자 워커 시슬러(Walker L. Sisler)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이젠하워 유럽 주둔군 총사령관 밑에서 유럽 전역의 전력사업을 총괄한 이력만으로 시슬러의 전문성과 경험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특히, 시슬러가 방한할 때 아이젠하워가 미국의 대통령이었으니 뒷배마저도 든든했다.
아울러, 시슬러가 방한하기 전 이미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을 연설하면서,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국가들에 관련 기술 제공을 천명한다. 하늘이 우리를 도운 것이다.
우리나라와 시슬러의 인연은 한국전쟁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이 우리에게 일방적 단전 조치를 취하자, 시슬러는 자신이 개발한 전력함(艦)인 자코나와 엘렉트라를 각각 부산과 인천에 급파해 준 인물이다. 한국전쟁 중에는 3만kW 발전함 레지스탕스도 추가로 보냈다. 전후에도 마셜플랜 경험을 살려 우리나라 화력발전소 건설에 개발차관을 지원하는 역할도 도맡았다.
1956년 82세의 이승만 대통령은 시슬러를 만난다. “석탄은 땅에서 캐지만, 원자력은 머리에서 캐는 에너지”라는 시슬러의 제안에 이승만 대통령은 언제부터 원자력발전을 써먹을 수 있을지 묻는다. “한 20년 정도 걸린다”는 시슬러의 답변에 이승만 대통령은 서슴없이 원자력발전을 위한 교육과 연구에 투자를 지시한다.
노령의 이승만 대통령은 생전 원자력발전의 성공을 볼 가능성이 없었기에 후대를 위한 그의 진심이 더욱 진정깊이 느껴진다. 더구나 이승만 대통령이 원자력발전에 투자를 결심할 당시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고작 60달러 남짓이었다.
이 시기에 1인당 6000달러의 거금을 들여 미국 알곤연구소 등에 238명을 유학시킨다. 연구용 원자로 건설에 35만달러를 투자하고, 원자력연구원 예산으로 1억4000만원을 배정한다. 이는 중앙공업연구소 예산 200만원의 70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아울러 정부 1~2급 공무원 20여명을 원자력 사업에 투입한다. 당시 우리나라 1~2급 공무원이 총 110여명이었음을 감안하면, 이승만 대통령의 원자력 사업에 대한 의지를 충분히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결심이 있은 지 21년이 지난 1978년, 고리 1호기가 시험가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반세기 만에 우리나라는 UAE에 한국형 원전 APR1400 4기를 수출함으로써 세계적 원전 강국으로 우뚝 선다.
한편, 우리는 한때 자학적 에너지 정책을 경험했다. 탈원전은 한전을 최악의 적자 늪에 빠뜨렸다. 출구가 보이지 않기에 서민들은 전기료 상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멀쩡한 월성 1호기를 부실로 조작하여 폐쇄를 결정했다.
결정 과정에서 에너지 계획은 논의 자체가 무시되었다.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더니 법적 근거도 없이 짜놓은 각본에 의해 일사천리로 원전 조기폐쇄를 단행한 것이다. 뒤이은 신한울 3, 4호기 사업 포기는 국가가 가한 만행이나 다름없다.
온 나라의 산천초목이 태양광 설치로 인해 유린이 되었다. 탈원전으로 환경보호를 자처하면서, 태양광으로 환경파괴를 주도했다. 태양광 사업에서 일부 정치세력 혹은 이들과 결탁한 기업인, 그리고 인근 나라 중국만이 덕을 보았다고 한다.
통탄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지도자의 그릇된 시각과 판단이 돌이킬 수 없는 참사를 불러온 것이다. 문제는 그 참사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우리는 역발상의 지혜를 모아 원전 해체를 통한 또 한편의 경제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다. IAEA(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국제원자력기구)는 세계 원전 해체 시장을 약 550조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신한울 3, 4호기는 사업을 재개한다고 한다.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SMR(Small Modular Reactor, 소형모듈원전) 사업은 환상의 팀워크로 더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확보하여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을 준비해 나가고 있다. 지도자 혹은 지도층, 지식인의 혜안은 이렇게 발휘되어야 하는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제10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에서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인프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제1권을 쓸 때부터 제10권의 집필을 준비했을 정도로 기존의 내용과 형식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인프라는 단순한 대형 토목공사가 아니다. 로마의 가도, 교량, 상하수도 등이 그러했던 것처럼, 인프라는 사람이 사람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한 국가의 천년대계를 준비하는 전략이다.
원전 인프라 정책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그린 에너지 주권의 꿈,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낸 후대의 의지와 노력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프라 정책에는 강은 강다워야 한다는 감성적 유희보다는 사람이 사람다운 생활을 하게 만드는 냉철한 판단이 요구된다. 더 나아가 강과 사람이 어울릴 수 있는 인프라 건설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그릴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우리는 당장에 확인이 안 되는 포퓰리즘으로 후대에 큰 짐을 안기는 무책임한 지도자가 아닌, 비록 지금 힘이 들지언정 미래 세대를 위해 만년대계를 준비하는 진심어린 지도자를 원한다. 아울러, 대한민국의 만년을 준비한 이승만 건국 대통령께 깊이 감사드린다.
“정확한 정보와 정직한 평가가 현명한 결정의 기초이다.”(건국 대통령 이승만)